기념일 =신용목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기념일
=신용목
나는 돌아올 수 있는 곳까지만 갈 것이다 11시 58분, 몽돌해변에 도착했다 돌이 돌을 때리고 있었다 죽은 돌 속에서 산 돌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잊을 수 있을 만큼만 기억할 것이다 11시 59분,
나는 하나의 돌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와 하나의 돌 사이에 또 다른 돌이 있었다 하나의 돌에 가기 위해 또 다른 돌을 향해 걸었다 돌 너머의 돌과 돌 사이에 돌이라면........그것은 파도, 하나의 돌이 깨어나면 모든 돌이 하나의 돌이 되어 도착했다
그것은
파도, 매번 태어나고 있는 중이라서 죽음은 한 번도 생일을 겪은 적 없다
파도처럼
생일과 기일이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 게다가 어버이날
친구로서, 축하와 애도가 하나인 사람
동지로서, 영광과 슬픔이 하나인 사람
게다가 아들로서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한 달 넘게 열사의 장례를 치르며 우리는 기회주의자가 되거나 오랜 맹세를 철없는 객기로 돌려세울 시간을 조금씩 늦춰야 했다
다는 아니다 현성이 형
전화해서 니 거서 뭐하노? 시 쓴다 카지 말고 빨리 와서 노동운동 해야 안 되겠나!
말했었다 창원 간 날
야근 마치고 아침 7시, 자동차 부품 공장 앞 육교에서 나를 태우고는 검은 차들이 알루미늄 휠을 반짝이며 달리는 걸 보면 눈물이 난다고, 이듬해 전화했을 땐 새로 들어간 공장에서 손가락이 두 개 잘렸다며 접합 수술 잘한다는 센텀병원에 있었다
후배 창근이는, 이라크 전쟁 반대 인간 방패를 짜더니 나중엔 양심적병역거부로 수감되었다
당고개로 예비군훈련 갔다 오며 나와 승진 하룡은 술을 마셨다 간간히 한숨을 쉬었고 제법 술이 올라서는 이 자식 살살 좀 하자, 돌아가며 욕을 했다
오래전
싸늘한 자취방에 둘러앉아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을 고민하던 강식 형은
어느 해변에 닿아 있을까
어제는 오늘만큼만 지나갔고 오늘은 내일만큼만 찾아왔다 12시 01분,
나는 하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루 앞에는 또 다른 하루가 있어서 하루와 하루 사이에........현주야, 잘 사나? 그냥 전화했다 창순이는 지홍이 왔을 때 신훈이랑 같이 보고 정복이는 영태랑 시청광장에서 함 봤다, 말하면
형, 태문이는 기억납니까? 물어오는 수많은 돌들이 해안이 되어 말갛게 해수를 씻어주는 날, 그것은 파도, 하나의 마음이 깨어나면 모든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되어 도착했다
생일의 공포는 그런 것이다 한번 시작되면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것
나는 죽을 수 있을 만큼만 살 것이다
PIN 018 나의 끝 거창 신용목 시집 26-30p
얼띤感想文
오전 6시 30분 회색 벽을 바라보며 나는 생명의 놀라움과 저항할 수 없는 공포에 대해서 생각했다. 온몸을 마비시키는 고개의 조소와 경멸에 대하여 이미 그것을 경험한 껄끄러운 가위만 내 옆을 지켜주었고 서버는 말없이 샷 잔을 넌지시 밀었다.
샷 잔이 내민 잔을 들며 케냐 한 잔을 마신다. 6시 45분,
그들이 내다 던질 땐 너도 던져라, 그들이 공포에 질려 있거든 잠시 안정을 취하고 그들이 미친 듯이 뛰어가거든 무슨 일이 있는지 꼭 확인하거라 반드시 다시 돌아올 때 있으니 그때 그들의 눈을 보고 지도를 확인한 후, 너도 함께 동조하라
키보드는 어깨를 마치 난타하듯 두드리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던 것일까? 7월 25일
옆 마을은 이상한 소문으로 뒤엉켜 있었고 무엇이 죽었는지 무엇에게 홀렸는지 시퍼런 칼날에 오열하기까지 한 아침,
침착과 안정은 수치와 치욕과는 거리가 멀고
환희와 희열은 분노와 절망과는 한 통 속이라는 것을
더군다나 아침은 인위적인 소문에 미쳐 날뛰는 것에 안주하느니 오히려 의기 충만한 함성으로 요소마다 허를 찌르는 힘을 내보이기까지 했다
오전 8시 59분, 따뜻한 수첩이 손을 잡아당기며 하나의 선인장과 두 개의 화분이 있는 쪽으로 떠밀면서 한 차례 의식을 가졌다. 그리고 다부지게 한 목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
병따개 함 봐라, 얘는 키는 작아도 하는 일은 야물딱지게 한다 아이가
아니다 야야 걔 어저께 술 진딱 마시고 인사불성 된 거 모리나
하이고 마, 괘안타 그래도 일할 때는 귀신도 모린다. 그래도 자 함 봐라.
어저께 마신 술이 덜 깬 건지 영 일어나지 않는 병따개에 바늘처럼 찌른 오전, 11시 50분
스카치테이프는 무심코 앉은 선풍기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얼어 죽을 신의 가호........누군가의 기도소리가 들렸다.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숙연하고 한편으로는 경건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복송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예전 우리 아버지도 저랬을까!
그러니까 오십만 년 전 기나긴 동굴을 나오며 가졌던 생각, 공포와 패배를 두고 우애와 신뢰를 저버리는 무리 앞에서 장엄한 칼은 무엇이었을까? 발 푹푹 빠지는 뻘밭과 우거진 숲을 헤치며 위압과 재액에 대해서 어떤 문신을 새겼을까?
11시 58분, 설렘보다는 불안에 더 가까웠고 미래의 안정에 대한 기대보다는 영원히 묻어야 할 일에 대해서 오히려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제는 손을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길을 찾아 나설 때도 되었듯이
다 비운 서버의 빈 곳을 보고 그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어루만지면서
여기저기 흩뜨린 머리카락과 면봉 그리고 면봉들 축축 젖은 걸레로 이리저리 닦으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괜찮아 임마 뭐 비만 내리는 마당을 보며 우산이 어디 있어? 비 저리 오는데 누가 걸어가 그냥 앉아 있어 커피나 마시자고.
정오 12시 나는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과 누가 엿들은 모양으로 내 머리 위 전등 하나가 오락가락 깜빡거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