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술잔 =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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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술잔
=김영미
아버지 저녁상에는 늘 반주가 따랐다 그 밥상을 기다리다 할머니와 먹곤 했는데 “오늘도 아비 반주했냐” 할머니는 물만밥에 누런 짠지만 드셨는데 나는 젓가락질 몇 번 가지 않은 달걀찜, 꽁치구이, 호박찌개를 먹었는데 쓰고 짠 것만 먹는 어른들이 이상하고 이상했는데
아버지는 예순다섯 생일 달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한 달 시한부 선고에 병원 문 나설 때 스테이크 먹자던 아버지, 일주일간 링거 맞으며 동해안 돌고 온 날에도 소갈비 먹자던 아버지는 물도 마시지 못하셨지 투명한 액체가 아버지를 잠식했다
아버지 나이 되려면 멀었는데 저녁이면 반주를 한다 그때 못 했던 아버지와 술 한잔, 잔과 잔이 부딪쳐 아버지에게 가는 배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아버지에게 가는 옛 노래 하늘 고개 넘어가시는데 지금도 아버지의 강은 보이지 않는데 그땐 몰랐던 술맛이 참으로 달다 말씀없이 지는 저녁 해 달짝지근하다
걷는사람 시인선 33 김영미 시집 기린처럼 걷는 저녁 39p
얼띤感想文
문장을 꼬거나 비튼 것 없다. 그렇다고 심한 비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솔직 담백하다. 저녁, 술 한 잔 혼자 마시다가 아버지 생각이 언뜻 난다. 에구, 아버지 생각은 초록동색草綠同色이다. 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셨다. 그러나 그 아버지에 비해 너무나 치졸하다. 그나마 받은 것도 있지만, 그나마 물려 줄 것 없는 이 초라한 병자, 복권 한 장 사는게 한 주 최대 행사다. 가장 저렴한 투자이므로, 예순다섯이라고 했으니까 병은 좀 일찍 왔다 싶다. 나의 아버지는 일흔다섯에 왔으니까, 그러고 보면 완벽한 수라고 늘 떠들었던 십, 십 년 하기야 그 십 년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껏 산 거 생각하면 십 년 하루처럼 느껴진다. 또 후닥닥거리다가 지나가겠다. 오늘도 아비 반주했냐? 가난은 아닌 것 같은데 가난이고 그러니까 쌓인 빚만 생각하면 분명 가난이다. 달걀찜과 꽁치구이와 호박찌개 히히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그냥 국수에 삶은 달걀 하나로 때우는 나날이다. 나이 들수록 단순하게 먹어야 한다. 그 말에 무게를 얹어 사실 그 말이 맞기도 하다며 안주한다. 속 가벼워야 한다. 먹고 나면 눈이 맑다. 너무 일찍 소화돼 버리는 것도 있지만, 몸 가볍다. 저녁이면 캔 하나에 땅콩 서너 알 정도 직방이다. 맹하다. 아버지 생각,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캔을 들고 있다. 완전 깡통이다. 툭 차면 터질 듯한 저 깡통 然后回家又 开罐头 여전히 집 들어오면 깡통부터 까는 억새다. 에휴, 곧 이혼당할 것 같은데 아직 소식은 없다. 하루 조심조심 조바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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