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구슬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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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구슬
=박지웅
꼬리가 아직 안 들어왔네
방문을 닫지 않을 때마다 엄마는
여우 눈초리를 올렸다
웃풍 들면 괴이한 꿈을 꾸게 돼
탁탁 문짝으로 아이들 꼬리를 끊었으나
혼이 나도 자꾸 꼬리가 생겼다
대설에도 남쪽은 눈이 오지 않았다
겨울은 길었고 꼬리가 아홉으로 늘었다
목단이불 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우리는 전설의 고향을 즐겨 봤다
몇 바퀴 재주를 넘더니
엄마는 금성TV 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도 활을 들고 쫓아갔다
긴 꼬리에 주둥이 괴고 기다려도
아무도 여우골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겨울 쪽방에서 눈이 내렸다
몇 개 여우구슬같이 남은 아이들
뒤꼍 거무스름한 감나무 속으로 언뜻언뜻
흰 꼬리 치듯 여우눈이 내렸다
문학동네시인선 157 박지웅 시집 나비가면 013p
얼띤感想文
시어에도 전설의 고향이라 써넣었지만, 마치 전설의 고향 한 편 지나가듯 재밌게 쓴 시다. 시제 ‘여우구슬’은 하나의 구체다. 뭐 구슬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우, 여우如雨나 여우如右로 그냥 여우로 보아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우측세계관 닮은 아니면 그렸다던가, 이것저것 생각해본다. 여우는 동물인 것도 맞고, 꼬리가 아직 안 들어왔다. 엄마는 시 객체로 나를 일깨운 존재다. 방문을 닫지 않을 때도, 시적 자아가 그 문을 닫을 순 없을 것이고 그 문을 닫는 건 엄마지만 닫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시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여우 눈초리 한다. 웃풍 들면 괴이한 꿈을 꾼다. 역시 시 인식 부족이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 문짝으로 아이들 꼬리를 끊었다는 얘기 말이다. 문짝 문+짝. 대설에도 남쪽은 눈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뭔가 큰 것이 오기는 왔지만, 마주친 것은 없었다. 북은 늘 시적 객체를 바라본다면 남은 그 아래다. 겨울은 길었고 꼬리가 아홉으로 늘었다. 여전하다. 구미호九尾狐를 착안한 꼬리 아홉이다. 구태여 아홉을 쓴 이유가 있겠다. 완벽함에 못 미치는 숫자지만, 또한 극적인 수다. 목단이불 속에서 꼬리를 흔들다. 목단은 목단目斷으로 시력이 미치지 못함을 뜻한다. 물론 목단은 모란이라는 작약과의 낙엽활목 관목임에는 틀림이 없다. 꼬리를 아직도 흔든다. 슬레슬레. 우리는 전설의 고향을 즐겨 봤다. 그러니까 미신 같은 이야기만 줄곧 나온다. 시는 시라고 얘기하지는 않고 이상한 얘기만 하는 것이다. 엄마는 금성TV 속으로 들어갔다. LG도 아니고 옛 이름인 구닥다리처럼 케케묵은 처리다. 아버지도 활을 들고 쫓아갔다. 여전히 전근대적이며 봉건적임은 속일 수 없고 총이나 레이저로 싸워도 시원찮을 판 활이었다. 여우골, 시적 자아다. 쪽방도 참신한 것 같다. 한쪽 두 쪽 뭐 그러다가 깨니까! 뒤꼍 감나무, 흰 꼬리 치듯 여우 눈이 내렸다. 더디어 세상눈 뜨이게 된 것인가 이젠 여우의 세상이 될 것이다. 하나의 경전처럼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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