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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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박지웅
문상객 사이에 사흘이 앉아 있다
누구도 고인과의 관계를 묻지 않는다
누구 피붙이 살붙이 같은 사흘이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져 있다
눈코입귀가 눌린 사람들이
거울에 납작하게 붙어 편육을 먹는다
사흘이 빈소 돌며 잔을 채운다
국과 밥을 받아놓고 먹는 듯 마는 듯
상주가 사흘을 붙잡고 흐느낀다
사흘은 가만히 사흘 밤낮 안아준다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
사흘 뒤 종이신 신고
불속으로 걸어가는 사흘이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157 박지웅 시집 나비가면 26p
얼띤感想文
좋은 시집을 사고 후회가 없는 것은 시를 읽고 무언가 즐거움 같은 것이 있을 때다. 어떤 시집은 사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것도 있다. 도무지 뜯어먹을 것 없는 글은 비록 한 끼 식사비에 해당하는 책값이라도 아까울 때가 있거든, 며칠 전에 산 시집 ‘나비 가면’ 박지웅 님의 글을 읽고 나머지 글도 궁금해서 샀다. 압권이다. 사흘을 읽고 있는데 죽음을 두고 웃음이 일어서는 될 일도 아니지만 무슨 장난기처럼 밀려오다가도 사흘에 탄복하고 만다. 여기서 사흘은 시 주체다. 문상객, 누구 피붙이 살붙이, 눈코입귀 눌린 사람들, 빈소, 잔, 상주가 한 축이라면 사흘과 고인, 편육, 국과 밥. 종이 신은 여기에 반하는 또 다른 한 축이다. 그러니까 문상객도 눈코입귀 눌린 사람도 상주도 사실 사흘을 몰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면서도 편육을 먹고 있거나 국과 밥을 먹고 다시 잔까지 채워가며 사흘 밤낮 흐느낀다. 시 인식 과정에 대한 묘사다. 그러고 난 후 사흘은 또 다른 문상객이나 상주나 눈코입귀 눌린 사람을 찾으러 나갈 것 같은 예언이라도 하듯 시 끝에서 논하고 있다. 사흘 한자 사전을 열어 놓고 음이 있을까도 찾아보았다. 死吃사흘 이런 단어는 없지만, 흐느끼다거나 말 더듬다, 머뭇거리다, 웃는다는 흘吃 사흘보다는 중국식으로 읽는다면 흘사, 그냥 흘吃이라는 한자어 하나 알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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