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들 =변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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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
=변윤제
것들.
창과 그리고 스키드 마크와 낮. 사지가 구부러지는 십자가 네온사인을 보며. 번역가 친구의 말. 끔찍함이라는 단어를 번역 못하는 언어는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이. 의자의 가장 반들거리는 모서리. 오히려 견딜 수 있는.
우리는 벤치에 주저앉아 끝없이 말을 했지. 서로 벗어날 수 없는 기억에 대해.
것들.
어쩌면 기억이라는 공원이 있어, 거기 도착하려고 하는 두 산책자처럼.
오늘 기억은 비색 다기 세트.
생각의 집을 짓다 우연히 발견한.
가루로 박살내 약물에 타 넣었다. 한입에 털어 마셨다.
것들.
포자처럼 팔 위에 일어나는 무늬. 햇살이 전염된 나무의자들. 핏줄 속에서 드러나는.
이렇게 말하다보면 끔찍함에도 사생활이 있다는 게 믿어지고.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는 커다랗고 작은 나무배. 확실히 볼 수 있는 것들이야말로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게 오래. 멀리서 아이들이 내린다. 삼각모를 쓴 미니버스. 비닐을 쓴 거북이 모자.
우리는 서로의 기억으로 가면을 만들어 각자에게 씌워준다. 걸어나간다.
가면은 천천히 정말로 얼굴이 되고. 오해가 오해로 남아 끝내 이해가 되는 순간처럼.
우리 얼굴에는 비색 물결무늬. 서로의 수면에 손가락을 넣고 새로운 마디를 만들어내는 일로.
우리의 본래 지닌 얼굴은 두 손에 가면으로 나눠 들고.
것들.
비로소 약효가 떨어지고 있었다. 기억. 정지된 장면 속에서 도기로 만든 비가 내렸다.
문학동네시인선 205 변윤제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026-027p
얼띤感想文
시제 ‘것들’ 지시대명사처럼 보아야 할 것이다. 것 1. 사물, 일, 현상 따위를 추상적으로 이르는 말 2. 사람을 낮추어 이르거나 동물을 일컫는 말 3. 그 사람의 소유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복수형이다. 그러니까 시 객체를 상징한다.
시는 총 여섯 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첫 단락을 보면 시 객체를 전적으로 묘사하고 시적 자아는 이러한 수모를 견딜 수 있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창과 그리고 스키드마크의 낮, 사지가 구부러지는 십자가 네온사인은 시 객체다. 스키드마크는 차가 급제동을 걸 때 노면에 생기는 흔적이다. 네온사인은 밤거리를 생각하면 밝음. 그러니까 인식의 묘사다. 사지가 구부러지는 십자가 네온사인 참 표현도 보면 기가 차다. 완벽함의 상징 십자가에 사지가 구부러져 있으니 뭔가 잘못되어도 엄청나게 잘못된 것이다. 의자의 가장 반들거리는 모서리 이 표현도 시 객체를 묘사하는 말로 내 몸을 잠시 앉혀놓은 그 자리, 의자다. 모서리는 구체와는 완전 딴판임을 생각할 때 오히려 견딜 수 있겠다는 시인의 강한 내면을 볼 수 있겠다.
두 번째, 시를 놓고 주고받는 대화다. 질문과 답변, 문제와 해답, 질의와 응답 같은 상황에 놓인다. 서로 벗어날 수 없는 기억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것들, 어쩌면 기억이 있어 우리는 또다시 되돌려 오르며 그 사건을 수습하며 그때 그 감정을 표현하며 아! 그때 죽지 말아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解, 그러니까 바다로 갔던 사실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다. 두 산책자처럼 어느 노인의 말이었다. 죽기 전, 아름다운 것은 자주 보아라! 구태여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된다. 가끔 저녁에 산책하면서 일몰을 본다든가 강변 두루미를 보아도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그 아름다움은 충분하겠다.
세 번째, 무슨 뽕 맞은 것처럼 표현한다. 어쩌면 시는 뽕이다. 시에 대한 정의가 또 서는 장면이다. 비색 다기 세트다. 색다르고 여러 갈래니 팔방미인이 아니라 사면팔방으로 찢는 고통 아니 어쩌면 환락 그렇다. 환각 현상으로 빚는 포자는 八 위에 일어나는 무늬임에는 틀림이 없다. 햇살이 전염된 나무 의자며 그 핏줄은 역시 홍조, 홍대, 홍어, 홍사에다가 분홍을 띄웠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홍차 한 잔 일단 마신다.
네 번째, 맞아요 시라고 해서 적어놓고 보면 시를 위한 시 쓰기 운동이지만 가끔 그 속에는 사생활이 믿어지기가 의심치 아니하고 끝내 그 표현은 예술의 승화로 인한 하나의 구체를 형성함으로 새로운 황금의 각배를 들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다. 삼각모를 쓴 미니버스, 비닐을 쓴 거북이 모자. 삼각모 분명 구체와는 다르며 거북하다는 어근 거북, 이 모두 시 객체를 상징한다.
다섯 번째, 가면은 각자에게 씌우며 가면은 천천히 얼굴이 된다. 시 풀이와 풀이에 걸맞지 않은 어떤 칠이라 해도 분명 그 속은 한 방향이다. 우리가 목표한 곳 그 지점까지 도달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면은 일찍 벗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것들의 문제임을 말이다. 오해가 오해로 남아 끝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명문장 하나를 여기서 읽고 있다. 오해誤解가 오해吾解로 잇는 하여 이해利害일지언정 이해理解로 모는 능력 이를 배양하는 게 시인의 최대한 목표일 것이다.
여섯 번째, 그러니까 약효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손가락 지指다. 지紙로 닿는 지知의 마디, 이는 시인의 의무다. 직업에 대한 의식이며 본래 지닌 얼굴이다. 두 손바닥 장掌에 장章을 끄집어내어 장藏을 넣으면 장醬맛처럼 약효는 전이 되어야겠다. 기억 그리고 인출 더 나가 황금으로 잇는다면 진정 我를 형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금파리처럼 내리는 비가 아니라 도 닦는 기량(道器)으로 그 비를 맞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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