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걸어가는 골목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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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걸어가는 골목
=김경수
꽃 피는 시간이 천 마리의 나비들을 몰고 온다.
천지가 온통 노란 나비들로 뒤덮인다.
바람 소리가 나비의 날개에 귀를 기울인다.
골목으로 뛰어내리는 눈에도 서늘한 감정이 실려 있다.
흰 눈에서 음악 소리가 세밀하게 퍼져 나온다.
오후의 물동이에는 빼앗긴 잠이 숨겨져 있었다.
눈꽃이 피는 도로에 암호처럼 떠 있는 버스 정류소에서
방울을 달랑이며 걸어가는 어둠을 발견한다.
어둠이 희망을 품고 홀로 꿈을 분만分娩하는 것을 본다.
딱딱한 어둠, 차가운 어둠, 뾰족뾰족한 어둠
그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골목의 속성이다.
골목에게 오후 두 시의 푸른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빈 서랍을 열자 숨어 있던 골목이 뱀처럼 기어 나온다.
어둠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 걸어가는 골목이
또다른 골목을 만든다.
푸른 눈빛을 한 사람들이 드나들던 골목 안으로
서늘한 문장이 악천후를 거슬러 연꽃처럼 흐른다.
시작시인선 0502 김경수 시집 이야기와 놀다 33p
얼띤感想文
죽음의 세계에서 현세를 바라본다면 실물을 볼 순 있을까! 거저 바람 소리처럼 지나가겠지. 바람에 귀가 있듯이 이승의 느낌을 아침처럼 닿을 거야. 혼자 걸어가는 골목, 시 객체를 묘사한다. 여기서 꽃은 시적 자아다. 물론 시적 자아를 표현하는 시어는 천지와 바람 소리, 서늘한 감정과 빼앗긴 잠을 들 수 있겠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천 마리의 나비, 노란 나비, 나비의 날개, 골목, 물동이, 버스 정류소, 방울 달랑이며 걸어가는, 두 시의 푸른 사과, 빈 서랍은 모두 시적 객체와 관련 있다. 꽃 피는 시간이 천 마리의 나비들을 몰고 온다. 시적 주체가 시적 객체를 만나는 순간이다. 이러한 만남은 무언가 석연찮게 흐른다. 가령 서늘한 감정으로 표현한다든가 음악 소리, 어둠과 각종 어둠들 이러한 것은 원만하지가 않다. 딱딱하고 차갑고 뾰족뾰족하다. 그러므로 이를 골목의 속성이라 해 둔다. 여기서 더 나가 뱀처럼 기어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골목을 만나 푸른 눈빛을 도로 불태우기까지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두면 괜찮은 일, 서늘한 문장 그러니까 어떤 철퇴에 가까운 충격까지 시적 자아는 느꼈을 뿐만 아니라 서늘한 어떤 감정까지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골목은 태연히 연꽃처럼 지나가게 되는 것을 시적자아는 눈여겨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시의 순환론이다. 천지가 요동하고 꽃이 피고 나비가 몰려오고 방울 달린 어둠(소)이 지나간다. 시간은 흘러 악천후 속 사과를 맺는 과정과 연꽃으로 피는 또 한 세계를 형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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