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해우소* =조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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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해우소*
=조현숙
그래 지겨운 우울증이라면 무작정 걸어 보는 거야
마실길 걷다 비로소 보게 되는 내 소갈머리 같은 간장 종지만 한 바닷가 모래톱 휘돌아 오솔길 오르니
아담한 뜨락에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어깨 위로 테이블 위로 푸른 바다가 출렁이는 거야
소원의 조가비들 두 손 모으고 기도를 수런거리고
누굴까 수평선 다칠세라 나지막이 깎아 놓은 지붕 위로 하오의 윤슬이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거야
꽃 내음 나무 내음 아슴한 향기 끌려 계단을 내려서니
와락 덤벼드는 수묵화 같은 내 안의 바다 한 자락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로 울컥 씹히는 거야
미욱한 마음 문 열고 그 해우소 들어서면 유리 벽마다 바다 넘실대고 나무 물고기들 유영하는 거야
계절마다의 빛깔로 찰박거리는 액자 속에 박물관처럼 수많은 이야기들 켜켜이 쌓아 놓은 거야
아련한 또 다른 몇 개의 계단은 섬과 등대와 수평선과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빛나는 길로 까마득 이어지고
문득, 내가 그 길에서 푸르게 자맥질하고 있는 거야
*해우소: 근심을 푸는 곳,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
시작시인선 0504 조현숙 시집 붉은 도마뱀 열차를 찾아 33p
얼띤感想文
바다 해우소, 바다는 자의 고장이자 자의 근원이며 자를 형성하는 곳 일정한 자격 기준이 있어 보인다. 해우소에서 우가 유달리 보이고 물론 근심을 푸는 곳이지만 우울증이란 그 원인에서 말이다. 물론 우울증은 우울증이다. 여기서 울은 풀이나 나무 따위를 얽거나 엮어서 담 대신에 경계를 지어 막는 물건이라는 것도 떠올려 본다면 오른쪽에서 그 막힘은 우울증으로 갈 수도 있겠다. 마실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 소갈머리 물론 마음이나 속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지만 소갈에서 오히려 푸름을 더 느끼곤 한다. 간장 종지만 한 바닷가는 어떤 모양일까? 온 바다를 다 덮을 수 있는 그릇은 아님을 알 수 있고 어디 가져다 부어도 간이나 하겠나 모르겠다. 모래톱 휘돌아 오솔길 오른다. 간에 기별도 없지만 까칠하기까지 하고 그 속은 좁기까지 하다. 아담한 뜨락에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자다. 자는 잃을 수 없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 담소가 아닌 상소라면 무릎 굽혀 다리 옆으로 내놓으면서 좌우 살피는 일, 도가 따른다. 조가비 조개껍데기처럼 모래사장 위 반짝이는 것도 없겠다. 조가비 갖고 가마솥에 누룽지를 박박 긁어먹는 재미 역시 시뿐이겠다. 나지막이 깎아 놓은 지붕과 하오의 윤슬은 대조를 이룬다. 물론 나지막이 깎아 놓은 지붕은 시 주체다. 하오는 오후의 또 다른 표현이다. 윤슬로 보기까지 했다면 거의 시 일치에 가깝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지막이 깔린 것도 이것보다 더 낮출 순 없기 때문이다. 꽃 내음과 나무 내음은 고딕에서 핀 것들이며 거기서 내려온다는 행위적 묘사 시어는 계단이다. 수묵화처럼 짙고 옅은 먹의 세계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점 하나 놓는 일도 착 퍼지는 한지의 느낌, 그것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미욱한 마음은 미련하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어리석고 미련하다. 사실, 시를 읽는 일 그런 거 같아도 그냥 읽고 마는 거 같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문자는 하나의 자다. 한 사람을 만난 듯 그 문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앞뒤 배경이 나오고 피안과 사바세계의 경계가 보인다. 그 경계에 서 있으면 세상 만정 다 떨어내니 다소 우울증 하나는 제거될 수가 있다. 사회에서 받은 겪은 일에 숨을 길 없는 숨길 수 없는 병적인 치료는 어쩌면 문자, 자에 있음을 그 자들의 모임이자 고향이자 本, 바다 그 속에 허우적거리며 자맥질한다는 것 거기서 한 번 죽어 돌아와 새 삶을 엮어 나가겠다는 하나의 의지다. 먹었으면 깨끗이 비우는 일, 버튼 눌러 싹 씻겨 올렸을 때 그 시원함 그리고 가벼움 한결 피는 꽃 얼굴이므로 때 묻지 않은 하늘이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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