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전동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나무의자
=전동균
쏟아지는 장대 빗줄기 속에서 간신히 나무의자를 하나 건졌습니다
등이 벗겨지고 기우뚱, 한쪽 다리가 짧은 놈이었습니다
아무리 말을 붙여도
묵묵부답
숨어서 다른 것들의 모습을 빛내는
어슴푸레한 그림자들이
왔다갔다했어요
내가 앉으면 사라질 것 같았어요
생각 끝에,
진흙투성이 신발 한 짝을 올려두고
108배를 올렸습니다
문학동네시인선 218 전동균 시집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043p
얼띤感想文
시제 ‘나무의자’는 裸無倚字겠다. 물론 독자께서 읽을 나름의 방법은 있겠지만, 옷 하나 없이 다 벗은 게 시라면 사실 그 속은 아무것도 없는 게 맞고 또 누군가 찾아와 읽으면 이 벗은 몸 의지한 바 있는 곳이 되며 그 형태는 자, 글자니 나무의자라 해 본 것이다.
장대 빗줄기, 이슬비나 보슬비가 아닌 좀 센 느낌이다. 장대라면 바로 꽂히는 힘을 말한다. 그만큼 강력하다. 구부리지 않는 기세 꺾는 꺾을 수 없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 하나를 본다. 그 빗줄기 죽죽 줄줄 무언가 하늘이 뚫린 것처럼 하늘을 뚫은 것처럼 새고 있다. 그 속에서 간신히 나무의자 하나 건졌고, 그러나
등은 벗겨지고 기우뚱, 한쪽 다리가 짧은 놈이었다. 그러니까 기형이라 이 말이다. 온 다리라도 시원찮을 판에 한쪽 다리가 짧은 놈, 그건 무언가 부족함을 인식했다는 말이다. 등은 오르거나 베끼거나 등잔이거나 등나무거나 고개거나 걸상이거나 하는 등, 시 객체를 묘사한다.
아무리 말을 붙여도 묵묵부답이다. 하나는 피안에 있고 하나는 사바세계에 있으니 말 통할 일 없다. 그러므로 살아 숨 쉬는 인간 세상에서는 즉 고대에는 굿을 하고, 신을 부르는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숨어서 다른 것들의 모습을 빛내는 어슴푸레한 그림자들이 왔다 갔다 했어요, 발가벗고 거울 앞에 서보라, 잘 난 것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어리다. 이 몸 하나 유지하기 위해 온갖 가진 욕망이 스쳐 지나간다. 의에서 식으로 식에서 주거로 좀 더 하다가 빚이 생겨나고 그 빚으로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빚덩어리로 그러니, 벗어야 한다. 갖가지 껴입은 것들에서 이제는 하나씩 풀어 없애야 한다. 완전히 다 벗는 그 날, 육탈할 것이다.
내가 앉으면 사라질 것 같았어요. 物我一體며 渾然一體가 되는 그날까지 그 경지에 이르면 세상 아무 부러워할 게 없느니 욕심은 없어지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까지 그 어디들 그 무엇인들 편하지 않을 게 있겠느뇨.
생각 끝에, 진흙투성이 신발 한 짝을 올려두고 108배를 올렸습니다. 진흙투성이 신발 한 짝이라 함은 내 걸어온 길을 옜다 함 바라 하며 너도 이렇게 걸어야 한다는 뜻이며 108배라 함은 백에서 오는 흰 白과 팔에서 오는 八은 여러 갈래를 상징한다. 배는 등이자 잉태며 짝이자 북돋는 일 더 나가 곱이자 북녘이며 광대며 노니는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