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게도 자존심이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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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회 작성일 24-09-09 20:43본문
돼지에게도 자존심이
=이재훈
햇볕이 들지 않는 작은 방에 앉으면 공중에 떠다니는 칼을 만난다. 칼 속에는 비명이 들린다.
뒤돌아보지 말 것. 자존심은 저 먼 동산에 유폐시킬 것. 칼을 가진 자는 제 귀를 자른다.
더 큰 힘으로.
더 큰 위기로.
선지자는 망할 말을 쏟아낸다. 나는 칼을 품고 잠을 잔다. 도시에는 칼잡이가 있고, 어린이와 여자가 있다.
중얼대는 망혼이 둥둥 떠다닌다. 칼을 넣어라.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을 찾는다면 귀를 찾겠다.
심판은 선언하지 않고 올 것이며 귀신은 살아난다. 십자가를 지는 거지와 강도가 그림자로 사라지는 시간. 발걸음이 하늘로 날아간다.
인간의 땅에 말을 섞는다. 여전히 방엔 햇볕이 들지 않는다. 옷가슴이 딱딱해진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 그게 모든 것이라는 말. 고기가 되는 말이 둥둥 떠다닌다.
문학동네시인선 166 이재훈 시집 생물학적인 눈물 026-027p
얼띤 드립 한 잔
돼지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 있다.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물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돼지에게도 자존심이다. 돼지에게도라는 말, 그러니까 무언가 하찮은 존재를 뜻하는 돼지와 그 하찮은 존재 역시 자존심이 있는 것인가? 하며 물어 의심치 않는 말로 확신 아닌 확신하게 되면서 시는 분개와 같은 어조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햇볕이 들지 않는 작은 방에 앉으면 공중은 둥둥 떠다니는 칼만 있고 그 칼은 여럿을 휘둘러 목이라도 떨어져 나간 때아닌 비명이 묻은 것이었다. 이에 자존심 또한 무너진 것이 되고 이 모두 더는 생각지 아니하고 저 먼데 동산 어딘가에다가 유폐까지 시켜버린다. 이로 인하여 이건 아니다 하며 제 귀를 자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더 큰 힘이 필요하나 그럴만한 힘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므로 더 큰 위기로 닿는다. 거기다가 좀 앞서 있는 자까지 하는 말이라곤 막말뿐이고 여기에 더한 것은 밤잠 설치며 칼을 품고 자는 수밖엔 없다. 그만큼 분개가 더한 것이 된다. 아! 이를 어쩌나 어린이 아이까지 더구나 처까지 데리고 있는 이 한 몸, 향후 거처는 어쩌란 말이냐, 중얼대며 있는 것이 꼭 망혼이 둥둥 떠다니는 꼴이 되었다. 아! 참자 참아야 한다. 칼을 넣어라, 사랑은 이제는 접고 앞으로는 연구에만 매진하자. 이에 대한 심판은 없을 것이니 중재도 없겠다. 그러므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홀로 일에 매진하려 하여도 떠오르는 일 이 귀신은 어찌 잡아 없애나! 일에 완벽성을 기하는 십은 강도처럼 거덜 난 것이 되었고 그림자만 둥둥 하늘로 날아가는 이 날, 햇볕 같은 날 다시 고대한다. 그러나 가슴은 답답하고 응어리가 지는 듯하니 먹기 위해 산다는 말, 단지 그게 모든 것이라는 것 이외는 무시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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