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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내 피에는 약냄새가 나고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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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회 작성일 24-09-10 21:01

본문

내 피에는 약냄새가 나고

=전동균

 

 

    내 입속엔 얼어붙은 눈 내 발목엔 진흙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 뿐이에요 바람 속을, 한밤 같은 햇빛 속을 수많은 그림자들을 품고 버리며 지나왔죠 한 모금의 커피 새벽의 담배 그것들이 나의 신이었다고 차마 말할 순 없어요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 말이 있으니 나는 지푸라기, 녹슨 칼, 펄펄 끓는 물, 다시는...........다시는.........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끝없이 기도를 배반하는 내 손은 차고 입술은 뜨거워요 내 피에는 약냄새가 나요 세상이 나에게 가르친 건 밥그릇 앞에 고개를 숙이라는 것, 하지만 머리가 발바닥에 닿아도 세상은 털끝 하나 바뀌지 않았죠 내 눈엔 모래들 내 발목엔 엉겅퀴 가시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를 위로할 수밖에 없죠 아주 먼 데서 아주 환하게 사람들은 펄럭이고 오늘은 나는 무덤 옆에서 춤을 추는 소나무들 속으로 걸어가요

 

 

   문학동네시인선 216 전동균 시집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016-017p


 

   얼띤 드립 한 잔

    내 입은 얼어붙은 눈처럼 녹지를 않는다. 종일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저녁이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생각 나지가 않고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밤에 그냥 깜깜한 밤일 뿐 진흙이고 뭐고 아무것도 묻은 것 하나 없는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사람이 입이 마르면 세상과 이별하는 건가! 수많은 그림자를 품은 시를 읽으며 멍청하게 앉아 약 기운을 내뿜는 담배처럼 신이 될 수 없는 영역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답답한 저녁인데도 답답하지가 않고 무엇을 입지 않아도 편안한 맨몸으로 그릇에 담은 포도를 까며 줄줄 흐르는 액을 닦아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 느낌 다만, 내 입은 마르고 있다는 사실, 그건 지푸라기보다는 까끄라기로 인해 무언가 긁었으면 하는 것과 녹슨 칼보다는 예리한 칼로서 싹둑 베어지는 느낌을 즐기고 싶을 뿐 지금은 얼음장처럼 얼어 있으니까! 보리로 담근 술 보리 냄새가 안 빠진다고 했다. 바닥은 시멘트고 어데 뚫을 곳 없이 맨발바닥으로 서서 질척거리는 허공만 딛는다.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밤 내 입은 얼어붙어 눈처럼 녹지를 않고 저 산에 그냥 꼭 붙어서 바람에도 날리지 않는 그 어떤 바람도 없거니와 내 피는 약 냄새만 풍기고 소나무처럼 오로지 하늘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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