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 듣는다고 했다 =이기리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그래도 다 듣는다고 했다 =이기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8회 작성일 24-09-12 21:27

본문

그래도 다 듣는다고 했다

=이기리

 

 

    레이스 커튼이 열린 창 위로 나풀거렸다. 방 한가운데에 침대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깔린 욕창 매트 위에는 할머니가 옅은 숨으로 누워있었다. 침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늘어진 피부가 뼈를 간신히 덮고 있었고 허리에 담요가 세 번 정도 감겨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내 이름을 듣자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눈을 희번덕하게 떴다.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면서 목울대를 떨었다. 쇳소리를 냈다. 눈꺼풀이 격렬하게 떨렸다. 겨우 뜬 눈을 다시는 감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조금만 더 보려고 하는 눈빛이었다. 할머니의 구겨진 손을 잡았다. 이렇게 물렁물렁한 핏줄을 몸속에 넣고 살았으니, 손이 아직 따뜻했다. 더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더 들려주고 싶었다. 할머니는 몸을 조금 떨다 다시 눈을 감았다.

 

 

   민음의 시 279 이기리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106p


 

   얼띤 드립 한 잔

    죽음의 과정을 묘사한다. 레이스는 구멍이 뻐끔뻐끔 뚫린 천이지만 마치 경주하듯 달려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죽음은 흔히 빠질 수 있는 일상사처럼 닿는다. 침대는 가구지만 침대는 가라앉은 지대에 놓인 정갈한 삶을 지지한다. 옅은 숨 쉬며 바라보는 저녁이 노을에 잠긴다. 무릎처럼 가까운 것도 없을 것이고 무릎처럼 민망하게 닿는 것도 없겠지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을 터 준다. 뼈는 핵심이다. 뼈와 살이 된다는 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늘어진 피부다. 아직은 기준에 근접하지 못한 잡설에 가깝다. 사물의 가운데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꺼운 담요로 덮은 듯 감겨오는 일, 그러나 열려 있는 봄의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는다. 죽은 자가 곧 죽을 이에게 소리 지른다. 어떤 때는 강 건너 쇳소리가 날 때도 있었다. 눈꺼풀이 격렬하게 떨리고 다시 또 눈을 감고 뜨는 일, 굴곡진 삶을 보는 일이다. 이때 다리미가 지나고 촉촉 물이 오르고 김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침대에서 다 식은 손을 어루만진다. 이름은 알려 뭐 하나! 죽음의 장에서는 그 어떤 것도 필요가 없고 이용가치도 없는 이미 닿을 수 없는 경계 너머 일이니, 비로소 할머니는 바닥에 누울 수 있었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913건 1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공지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461 1 07-07
4912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 0 06-22
4911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 0 06-18
4910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 0 06-15
4909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4 0 06-12
4908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5 0 06-08
490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5 0 06-08
4906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 0 06-05
4905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 0 06-05
490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 0 06-05
4903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9 0 06-01
490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 0 06-01
4901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 0 05-31
4900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0 05-30
4899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 0 05-29
4898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 0 05-25
4897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 0 05-24
4896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 0 05-22
489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0 05-21
4894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 0 05-20
4893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 0 05-19
4892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 0 05-18
4891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 0 05-18
489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 0 05-18
4889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 0 05-16
4888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 0 05-15
488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8 0 05-13
4886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 1 05-10
4885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 0 05-09
488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 0 05-09
488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 0 05-06
4882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2 0 05-05
4881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 0 05-03
4880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 1 05-02
4879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 0 05-02
4878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 0 04-30
4877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 0 04-30
487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 0 04-30
4875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 0 04-29
4874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 0 04-27
487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 0 04-27
4872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 0 04-24
4871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 0 04-24
4870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7 0 04-20
4869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0 04-18
4868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 0 04-18
486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 0 04-18
486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5 0 04-15
4865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 0 04-13
4864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 0 04-12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