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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열심히 하고 엄청 착했다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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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회 작성일 24-09-18 21:00

본문

일도 열심히 하고 엄청 착했다

=박지웅

 

 

척은 이웃집에 살지만 이웃인 척은 안 했어요

친절과 파괴의 어원은 같아요 요즘은 이웃으로 살지요

 

척이 방문을 열면 입을 벌리고 나는 빙그르 돌아요

나더러 악어 같대요, 물론 아니죠

침대가 내 구역일 뿐이죠

여기에서는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요

 

밤은 내 밥벌이예요, 나는 여권도 없는 스트립 걸

홀딱 벗고 들어갈까요? 사랑이라는 세계 나는 잘 몰라

 

먼 데를 바라보는 사람은 착하거나 외로워요

인간은 모두 굶주림에서 출발했어요

내가 반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가 데리고 온 거짓말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 말을 들었으니 내 귀는 충분히 잘 살았어요

 

가을이 등을 돌릴 때 첫눈은 내려요

생년월일이 없는 몸통을 우리는 눈사람이라고 불러요

나는 밤마다 눈사람이 되는 거죠

나에게 오세요, 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게요

 

딱딱하건 흐물거리건 형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풍경과 역할이 바뀔 뿐 악의 질량은 변하지 않아요

일도 열심히 하고 엄청 착한 이웃이여

낯설어도 부끄러워도 마세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때라야 정확히 잴 수 있어요

혼자가 되면 내 저울 위에 올라와

영혼에 실린 악의 무게를 달아보세요

 

 

   문학동네시인선 157 박지웅 시집 나비가면 078-079p



   얼띤 드립 한 잔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다. 시늉과 체와 비슷하다. 척은 줍거나법도나 길이로 쓰는물리치는 것도새 한 마리나 한 사람을 뜻하는겨레씻는 것도오르는 일등골뼈를 가리키는파리하거나던지거나뼈를 바르는 일근심거리도대범한 것도밟는 일도 척이다. 이러한 척은 이웃에 산다. 그렇지만 이웃인 척은 안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어떤 직종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일이다. 친절과 파괴의 어원은 같다. 어원은 어떤 말의 생겨난 근원으로 본다면 그 본거지는 애초 친절에 있는 것도 맞는 일이며 파괴도 맞는 일이다. 원인제공이 없는 결말은 없기에 말이다. 척이 방문을 열면 입을 벌리고 나는 빙그르 돌아요. 척은 이웃이므로 내 사는 일까지 볼 수 있다. 나는 솔직히 관심이 없지만, 그래서 그들은 나더러 악어라 한다. 도리어 척이 더욱 물고 안 놓아주는 것처럼 그러나 침대는 창처럼 서 있는 자에 불과하다. 여기에서는 문법과 상징과 은유와 같아서 척이 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므로 밤은 내 밥벌이가 된다. 나는 여권도 없는 다 벗은 걸, 이미 다 벗었는데 알아보는 사람은 사실 없다. 사랑이라는 걸 잘 모르지만, 척은 홀딱 벗을 수 있을까? 그건 이웃을 따먹은 일이 될 것이다. 먼 데를 바라보는 사람은 중심에 있지 못하고 수많은 옷으로 치장하기까지 한다. 사람은 좋으나 그가 갖는 거짓말은 싫다. 그는 진실을 모르기에 늘 굶주려 있기만 하다. 가을은 여름을 끝난 시점에 시작한다. 생년월일이 없는 몸통은 눈처럼 내리며 어디서든 소통을 원하겠지만 빙하처럼 영영 굳어버린 것도 있을 것이다. 만년설처럼 사랑이 없다면 풍경은 그대로일 것이며 질량 또한 변하지 않아 일은 없는 것이 되며 오히려 이웃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영혼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눈사람은 다름을 볼 수 있다. 오늘같이 따뜻한 이웃이 있다면 사르르 녹는 계절을 만나 낯설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혼자魂字 일도 하는 것이 되며 엄청 착한 무게를 띄우는 일이 되므로 저울은 늘 같은 것으로 동질감마저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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