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야일경秋夜一景 =백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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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일경秋夜一景
=백 석
닭이 두 홰나 울었는데
안방 큰방은 홰즛하니 당등을 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여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눌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염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데서 물새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갔다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91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추야일경秋夜一景” 어느 가을밤의 정취다. 약 백여 년 전 시인 백석이 살았던 삶의 무대다. 어느 농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얘기지만, 지금은 이러한 풍경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시를 읽는 내내 무언가 정감 미가 흐른다. 닭이 두 홰나 울었다. 홰는 새벽에 닭이 홰를 치면서 우는 횟수를 세는 말이며 홰즛하니는 ‘호젓하니’의 평안 방언이겠다. 당등은 장등長燈으로 밤새도록 등불 켜두는 것을 말한다. 당시, 전기가 없었으니 그 분위기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어 있다. 그것처럼 한쪽을 대변했지만, 시인께서도 자에 몰입하며 상황을 읽고 있었으리라!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눌을 다졌다. 오가리는 무나 호박 따위의 살을 길게 오리거나 썰어서 말린 것으로 경상도 사투리는 ‘오가락지’라 한다. 표준말은 무말랭이겠다. 석박디는 섞박지, 배추와 무, 오이를 절여 넓적하게 썬 다음 여러 가지 고명에 젓국을 쳐서 한데 버무려 담은 뒤 조기젓 국물을 약간 부어서 익힌 김치다. 오며 가며 읽는 이치와 저녁 얇은 지紙 위에 마음을 놓는 정황은 오가리며 석박디겠다. 청각은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해초로, 김장 때 고명으로 쓰기도 하고 그냥 무쳐 먹기도 한다. 마눌은 마늘이겠다. 생강에서 살아서 읽는 강좌에 파, 하나의 지류며 청각, 바위에 착 들러붙어 낀 삶의 음역(音域,音譯)으로 마늘은 白을 상징했겠다. 안방 큰방에 모인 인간들은 모두 시인의 친지 가족이겠지만, 오가락지며 김치를 담그듯 시인의 글 읽는 묘사가 시대를 흘러 얘까지 흐른다.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염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데서 물새가 울고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갔다. 토방은 ‘뜰’로 마당과 구분된다. 여기에 쪽마루를 놓기도 해서, 집의 여러 곳곳 분위기까지 읽을 수 있다. 물새와 햇콩두부가 대조를 이룬다. 물새에서 지구의 정황을 읽으며 햇콩두부에서 막 건져 올린 따끈따끈한 시 한 수가 숨이 들었으니 그 냄새가 싱싱도 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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