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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이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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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0회 작성일 24-10-27 22:02

본문

취미

=이운진

 

 

나는 침대를 수집해요

어제는 사랑이 없는 침대 하나를 찾았어요

당신이 나를 안고 인형놀이를 하는 동안

내가 종이 인형처럼 누워 있던 침대였지요

심정쯤이야 안 가진 사람이 없는데도

장미마저 사람만큼 눈빛을 가졌는데도

당신은 내 눈물을 침실로 꾸며 놓았지요

심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둘이 아니라 셋이거나 다섯이라면

나도 비극을 완성할 용기를 냈을 텐데

내 목소리가 나를 울게 하는 밤

난 당신의 침대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커튼을 내리고 문을 잠갔지요

당신이 한 번도 믿지 않았던 사랑이

당신에게 생기는 날

나는 평생 모은 침대를 부수어

아름다운 나의 관을 짤 거예요

당신의 후회와 나의 슬픔에 꼭 맞는

마지막 침대를 만들래요

 

 

   시작시인선 0185 이운진 시집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39p



   얼띤 드립 한 잔

    여기서 침대는 시를 제유한 시어다. 나는 침대를 수집한다는 문장은 나는 시를 수집한다는 뜻과 같다. 어제는 사랑이 없는 침대 하나를 찾았어요. 내 마음 하나 묻어놓을 만한 시가 없었다는 얘기다. 시와 내통이라면 좀 그렇지만, 마음이 가고 그간 억한 무엇이 있어, 그것을 뚫는 어떤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 침대는 그야말로 좋은 침대겠다. 그러므로 나는 종이 인형처럼 누워 눈빛만 머금고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심정이라는 것도 장미라는 것도 침대에서 비롯한다. 여기서 심정이 깊은 정 본심을 말한다면 장미는 아무래도 검정을 상징한 말로 장미長尾가 어울릴 것이다. 긴 눈썹이다. 당신은 내 눈물을 침실로 꾸며 놓았지요. 여기서 논한 침실은 침대와는 역학관계를 이룬다. 침대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라면 침실은 마음이 머무는 것으로 말이다. 심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둘이 아니라 셋이거나 다섯이라면 나도 비극을 완성할 용기를 냈을 것이다. 심장은 마음이다. 여럿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장이 심장이라면 비극은 침대로 이룰 것이다. 죽음은 드디어 침대의 수집에서 끝마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아직 죽음을 맛볼 수 없기에 당신의 침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커튼을 내리고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한 번도 믿지 않았던 사랑이 당신에게 생기는 날, 나는 평생 모은 침대를 부수어 아름다운 관을 짤 것이다. 진정 내 마음을 묻을 곳이 있다면 그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지막 침대가 아닐까! 죽기 전, 침대를 만들어놓고 갈 수만 있다면 많은 시인의 욕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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