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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자각몽 =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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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2회 작성일 24-10-2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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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

=이기리

 

 

    누군가의 감은 눈 속을 헤매고 있다. 식당에서 나온 뒤부터였다. 너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묶는 중이었다. 잠시 차에서 모자를 가져오는 사이에 네가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우리가 앉아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그릇에 좋아하는 반찬을 올려주고 함께 사진도 찍었던 테이블엔 이미 어떤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뒷문에는 열리는 문에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적힌 종이가 빳빳하게 붙어 있었다. 식당 바로 옆에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긴 터널이 있었다.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지만* 종종 잠 못 드는 새벽이면 찬 바람이 부는 공원을 돌며 너에게 남겼던 음성 메시지. 오늘도 자는 데 실패했어. 해가 뜨는 걸 보면 그제야 눈이 감기겠지. 나는 왜 이렇게 불면증이 심할까. 정오를 넘긴 다락방에 가득 들어차는 햇빛.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어김없이 네게 전화가 왔다. 어젯밤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볼래? 맨발로 백사장을 밟고 눈을 찡그리는 나의 이마 위로 손차양을 해 주는 너의 모습, 잔디밭에 누워 노을의 냄새를 맡던 여름, 눈발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며 내게서 멀어지는 너의 코트 자락. 메아리로 돌아오는 너의 이름은 누구의 음성이지. 터널 끝에 맺혀 있는 순백의 빛을 향해 걷다가 일순간 모든 소리가 차단된 적막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누군가의 감은 눈 속을 헤집고 있다. 이대로 혈관을 타고 내려가 온몸을 돌아볼 수는 없을까. 여기 바다를 건널 수 있는 터널이 있대. 너는 이미 식당 문을 연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가자고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 뒤에 뚫린 구멍으로 묶은 머리카락은 빠져나왔다.

 

 

    *하재연, 나만의 인생, 라디오 데이즈(문학과 지성사, 2006)

   민음의 시 279 이기리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92-93p



   얼띤 드립 한 잔

    시는 언제나 감은 눈이다. 그 눈 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일은 독자의 일이다. 감은 눈을 자세히 살피면 마치 식당에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 각종 시어로 칼질이 오가는 도마와 그릇들 부딪는 소리가 난다. 그것은 긴 머리카락을 묶는 일이며 한 그릇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시국을 형성하는 일이겠다. 시국을 완성하기에 앞서 우리는 충분한 대화가 필요했다. 서로의 그릇을 보고 서로 모양을 확인했다. 반찬을 올려주기도 하고 먹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고 생계를 이어나갈 계책이나 방도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뒷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긴 터널과 같은 비싼 통행료를 지급하듯 시간을 마냥 보내야 했다.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다.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지존의 영역이다. 그러나 새벽이면 이불을 덮고 있어도 추웠고 공원에 온 느낌처럼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나에게 해는 있을까? 빌빌 꼬여 있는 실타래를 풀 수는 있는 걸까? 점점 자신감은 떨어지고 있었다. 가로수 은행나무 이파리도 하나씩 떨어지는 계절, 가을을 맞아 몸은 어김없이 더욱 깊숙이 허공에 잠겨 든다. 오전 아홉 시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니? 2층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사실, 신부의 얼굴을 보고 곧장 식당에 들어갔었다는 사실, 그리고 저녁은 먹지 않았다. 도대체 뭘 먹고 지내는 거야 잘 먹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전화를 끊지 못했고 나는 예의상 그 전화를 계속 받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 치기 들어 빼기 휘돌려 치기 아예 눌러서 끼워 넣기 그냥 곁눈질로 흘끔거리기 여전히 잘 안 되는 손가락을 보며 나는 무언가 계속 주고받으며 타자를 하고 있었다. 세속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차단된 대숲만 거닐고 있었다. 통신은 두절이었고 사람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누가 깃대를 꽂고 바람을 몰면 홀연한 자세로 지켜볼 수는 있는 걸까? 너는 이미 식당 문을 닫고 개밥까지 단단히 챙겨 나간 것에 감각을 잃은 눈빛만 머물고 있을 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바람 소리 물소리 하나 들을 수 없는 귀만 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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