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악기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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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회 작성일 24-11-02 16:42본문
비의 악기
=송재학
레인스틱* 속의 비는 왜 고요하지? 비의 중력장에선 물질은 모두 형광이다 비는 익숙하고 놀라운 감정이다 천천히 레인스틱을 기울이면 맨발의 우각(雨脚)이 걸어간다 젖은 풀의 정강이가 빗줄기 닮은 것도 보인다 레인스틱으로 스콜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고 하지만 손바닥만큼 고이는 비의 고요가 좋다 모래와 자갈, 자갈과 조개껍질 부딪치는 소리이면서도 까칠까칠하면서 젖어가는 느린 파문이 좋다 느린 빗발은 그림자까지 소소하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토닥토닥 비는 서로 극미립자의 혀를 건네고 있다 레인스틱은 물의 트럼펫이면서 물의 약음기이다 비와 레인스틱은 내 몸속 98%퍼센트 수분을 재빨리 눈치챈다 우기의 레인스틱은 구름이 숨겨논 먹구름과 천둥의 순서도 잊지 않는다 한 번 젖어버린 레인스틱처럼 나도 젖어버린 기억을 흉곽에 채우는 중이다 내가 빗방울로 생각될 때까지
주)*비를 가장 그리워했던 선인장 가지 속을 파내어 모래나 자갈 등을 넣어 뒤집어 세우거나 흔들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칠레 등지에서 기우제에 사용된다.
문학동네시인선 003 송재학 시집 내간체內簡體를 얻다 026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로 사용한 ‘비의 악기’는 시 객체를 상징한다. 레인스틱은 주에서 풀이했듯이 악기의 한 종류지만, 비의 장대 일종의 나뭇가지 혹은 막대기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거나 죽은 물체로 꼿꼿하게 선 어떤 존재를 예감한다. 그러니까 레인스틱 속의 비는 왜 고요하지? 하며 되묻는다. 고요할 수밖에 없다. 모르니까. 비의 중력장에선 물질은 모두 형광이다. 중력장은 지구의 힘의 작용이다. 마당에 떨어지는 힘 안착이다. 무언가 생각이 있으니까 떨어지겠지. 그것들은 모두 색깔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그것을 형광이라고 한다. 비는 익숙하고 놀라운 감정이다. 천천히 레인스틱을 기울이면 우각(雨脚)이 걸어간다. 우각(雨脚)은 세차게 모는 빗줄기다. 바닥과 거리감이 생기는 강한 표현이다. 젖은 풀의 정강이가 빗줄기 닮은 것도 보인다. 풀은 마음을 상징한 것으로 초草나 pool로 보아도 괜찮겠다. 정강이는 희고 굵은 하나의 대를 지칭한 것으로 빗줄기와는 대조를 이룬다. 레인스틱으로 스콜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스콜은 열대지방에서 일어나는 강한 소나기를 말한다. 소나기 소疏 나기처럼 즐기는 일은 시인의 일이다. 하지만 손바닥만큼 고이는 비의 고요가 좋다. 손바닥은 하나의 장을 은유한다. 장맛을 우려내는 일은 한마디로 고요다. 모래와 자갈, 자갈과 조개껍질 부딪는 소리이면서도 까칠까칠하면서 젖어가는 느린 파문이 좋다. 모래는 사事.思.史,를 은유한 것이라면 자갈字渴은 자에 대한 목마름이다. 조개껍질 고를 조調 고칠 改 그 껍질과 부딪는 일은 역시 까칠까칠한 눈매가 있어야겠다. 그러므로 느린 빗발은 그림자까지 소소하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토닥토닥 비는 서로 극미립자의 혀를 건네고 있다. 타닥타닥 토닥토닥 의성어로 때리고 치고 더러 빼다가 칠하는 소, 극미립자極微粒子 기체 안의 아주 작은 입자를 형성한다. 립粒은 쌀의 낟알이다. 구체다. 레인스틱은 물의 트럼펫이면서도 물의 약음기가 된다. 한마디로 악기로 작용한다. 레인스틱은 내 몸속 98% 퍼센트 수분을 재빨리 눈치챈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의도한 바를 잘 들추어낸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2% 퍼센트는 오리무중五里霧中임을 알 수 있다. 우기의 레인스틱은 구름이 숨겨 논 먹구름과 천둥의 순서도 잊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이루고 있는지 그 내막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한 번 젖어버린 레인스틱처럼 나도 젖어버린 기억을 흉곽에 채우는 중이다. 그러므로 시가 나왔고 내가 빗방울로 생각될 때까지 깎고 다듬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빗방울은 구체를 상징한 시어로 한자로 표현하면 적滴이다. 물의 최소 단위는 물방울 즉 적滴으로, 수적천석水滴穿石, 대해일적大海一滴과 같은 사자성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저 바닷속에 풀어 넣는 힘 레인스틱에 혼을 불어넣는 일로 잠잠한 고요를 쩍 가르는 일은 필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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