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바람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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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회 작성일 24-11-06 21:10본문
지나가는 바람
=이병률
그때 난 인생이라는 말을 몰랐다
인생이라는 말이 싫었다
어른들 중에서도 어른들이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이거나
어쩌면 나이들어서나 의미를 갖게 되는 말인 줄로만 알았으며
나는 영원히 그때가 오게 되는 것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 나한테 인생이 찾아왔다
굉장히 큰 배를 타고 와서는
많은 짐들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앞으로는 그 많은 짐들을 짊어지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하나 풀어봐야 한다고 했다
좋은 소식 먼저 들려줄까
안 좋은 소식 먼저 전해줄까
언제나처럼 나에게 그렇게만 물어오던 오전 열한시였는데
예고 한 번 없이 인생이 여기 구석까지 찾아왔다
문학동네시인선 145 이병률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021p
얼띤 드립 한 잔
인생은 언제부터일까? 그것부터 곰곰 생각해본다. 오전 열한 시였다는 말, 젓가락처럼 쌍으로 만난 我와 非我의 鬪爭이었다. 정말 젓가락처럼 쌍으로 이룬 세계였을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쪽은 젓가락처럼 굴었고 한쪽도 젓가락처럼 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나의 무지에 대해서 물정의 흐름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 굳이 억지로 꺾을 필요도 없었으며 꺾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지켜보는 일, 마음을 놓고 평정을 찾으며 그냥 지켜만 보는 일뿐인데도 너무 성격이 급한 나머지 내 손가락을 끊어야 했다. 인생은 아침 세수하고 난 후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배에 오른다. 지난밤 묶었던 짐들을 하나씩 풀며 내가 올라야 할 저 높은 산을 보며 깊은 계곡의 지점을 확인하기까지 비행의 대중적 원리와 배의 지나간 역사를 기술적으로 젖힌다. 좋은 소식 먼저 들려줄까? 안 좋은 소식 먼저 전해줄까? 오늘도 아둔한 망치 하나가 배에 올랐다는 사실과 오늘도 그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은 사실은 참혹한 인생의 서두였다. 그렇게 열한 시가 되고 예고 하나 없이 인생은 여기 구석까지 밀려 박혀 있는 자갈 그리고 모래, 조개껍질로 다친 발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 십일월 그 서막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죽겠다고 그러나 그 죽음을 부르지 못해 몸부림치는 자로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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