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맥은 흐르고/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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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86회 작성일 24-11-08 10:28본문
(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41108)
수맥은 흐르고/강혜정
그 골목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면 대문이 반쯤 열려 있다. 땡고추에 잔멸치나 볶을 거라는 여인은 밤이면 허리에 작살이 꽂힌다는 푸념을 햇살에 말린다 낮은 담을 넘은 하소연은 낡은 홀아비 등허리를 기어다니고 얼마 남지 않은 가을에 담쟁이 애간장이 붉게 타오른다
언제부터 흐르고 있었을까, 방바닥에 귀를 대고 배꼽 속으로 몸을 말아본다. 봄이 꼿꼿하게 허리 세우며 꽃을 뿌리던 어느 날도 흐르고 아득한 바다에서 엄지를 빨고 있는 희미한 형상이 스쳐 간다 흰머리 나면서 배웅하는 일이 자주 돋고 오늘만 되풀이하는 달력은 말이 없다.
나를 잊지 말라던 시인은 기어코 묻혀 숨은 물로 흐르다 헐렁한 이야기는 혼령으로 세상을 떠돌고 오늘 골목을 살다 간 줄거리는 땅 밑으로 스며들어 좁은 지층을 떠다니며 느린 봄을 잉태한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이름을 손톱으로 긁어 본다
물 흐르는 곳에 이야기가 흐른다 모퉁이에는 물여울이 가끔 생기고
(시감상)
김경주 시인이 말했다. ‘지금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문득 패기와 열정과 시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아마추어의 작품이 기성 시인의 작품보다 더 많은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본문에 ‘오늘을 되풀이하는 달력은 말이 없다.’라는 행간이 지금의 나와 비슷하기에 울림이 크다. 풋풋한 문장과 문장 속 시인의 결은 그리움의 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을 묘사하는 시인의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리하다. 시는 프로필이나 문학상을 읽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를 읽는 것이며 시인을 읽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배웅하는 일이 자주 돋는다. 늘 배웅하는 위치에 있으면 좋을 텐데, 삿된 푸념을 해보는 늦가을. 이 가을을 배웅하는 일이란 성숙해지는 나를 숙성하는 시간이다.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강혜정 프로필)
경남 진주, 시그널 동인, 시나무 동인, 시에 대한 열정과 혜안이 돋보이는 푸릇한 신인
강혜정 시인
댓글목록
崇烏님의 댓글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형님 별고 없으시지요....오늘 너무 멋진 시 주셔 저도 감상해 봅니다.
좋으네요..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싶어도 그냥 보내는 시간, 이참에
저도 퇴근해서 보다가 써보았네요...감사합니다. 형님
가을도 다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