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과 딸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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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24-11-16 21:28본문
팔과 딸
=김상혁
“그 팔은, 어찌된 일입니까?” 팔은 인생의 은유 같다.
이에 선천적으로 사지가 짧은 외국인 남성이 라디오에서 말하길, “그날 내가 십 센티미터만 손을 더 뻗을 수 있었더라면 국경을 넘다 카고 트럭 밑으로 굴러떨어진 딸애를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식이란 부모가 떼어내기도 마음껏 놀리기도 어려운 수족에 불과하다. 아이가 자립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생각만 든다. 쫓기고 붙잡히고 영 헤어지고 총 맞는 사람들 얘기는 신경도 못 썼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남성이 훌쩍거리기 시작했을 때 라디오 진행자가 이르길, “방금 동시통역사의 실수로 ‘팔’이라 물어야 할 것을 ‘딸’로 잘못 전달했다. 그래서 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의 짧은 팔에 관해 다른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학동네시인선 192 김상혁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043p
얼띤 드립 한 잔
세상은 오독誤讀의 천지다. 팔은 인생의 은유 같다. 팔은 어깨와 손목 사이의 부분으로 어깨는 어+깨처럼 손목은 장을 환치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장이란 노는 물이자 마당이자 베풀거나 꾸밈을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팔은 칠에 하나를 더한 수의 개념으로 여러 갈래를 상징한다. 어찌 되었든 팔과 딸을 혼동한 라디오 진행자와 그것을 잘못 읽은 독자와 같은 외국인 남성과의 관계에서 시를 제유한 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이 안 간다. 죽었다면 좀 더 나은 세상에 갔을 거라고 믿고 싶고 그곳에서 제 뜻을 펼치듯 이 아비의 이름을 떨쳐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가는 만만치 않다. 쫓기고 붙잡히고 두들겨 맞는 데다가 총까지 난사 당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걸레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을 알았나 몰라! 외국인 그 남성, 그 시인 말이다. 십 센티만 길었더라면 하고 한탄한다. 십은 완벽함을 상징한다. 기준에 준하는 수다. 기준基準에서 준準을 자세히 보라! 물 수氵변에 송골매 준隼으로 이룬 글자다. 송골매 준隼은 새 추隹에 열 십十이 합한 글자다. 물수리는 물속 고기를 낚는데 한 치의 오차가 없다. 강한 바람을 가르며 물빛 어린 어를 잡아내는데 그 속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긴 발톱에 단단히 잡은 것을 긴 날개 퍼덕이며 오르는 그 눈빛, 가히 전문가다. 시의 완벽성이다. 그러니까 어설프게 썼다간 개꼴 나는 것은 일도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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