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는 일천칠백팔십오 년에 태어나 팔백오십구 년에 사망했다. 궁예는 두 세계를 동시에 봐야 했다. 우리는 그것을 실수라 부르지 않는다. 알아. 책이 사실만을 다루지는 않지. 물론 저자의 약력까지 포함하여. 하지만 일천칠백팔십오 년 태어난 퀸시가 팔백오십구 년 사망한 것은 사실이라고. 내가 봤다. 내가 봤다고. 퀸시는 심연에서 탄식을 중얼거렸다. (탄식에서 심연을 중얼거렸다?) 궁예는 애연가였다? 내가 다 봤다니까. 그게 무슨 소용이람? 한 무리는 낮과 밤을 세우고 한 무리는 낮과 밤을 허물 뿐.
민음의 시 326 박지일 시집 물보라 23p
얼띤 드립 한 잔
여기서 퀸시는 특정 아무개를 지목한다. 퀸은 킹보다는 작은 어떤 개념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좀 늘여서 퀸시는 일천칠백팔십오 년에 태어났고 팔백오십구 년에 사망했다. 생몰연대를 지금 얘기하고 있다. 일천칠백팔십오佾踐漆白八十吾 년撚, 춤처럼 밟은 한때를 옻칠이라 하면 여러 까발리는 일로 나를 세우는 것을 비비고 꼬아두는 해에 태어난 것이다. 팔백오십구叭白奧十球 년撚, 입 벌려 말한 속은 완벽성에 이르렀으니 사망이라 해둔다. 사실 수로 표시한 년도는 별 의미가 없다. 수 하나하나가 하나의 알 곡穀에 머리 두頭로 곡두穀頭며 곡두생각穀頭生角이다. 궁예는 후고구려의 건국자다. 그는 눈 하나가 없어 애꾸눈(獨眼)이었다. 마치 개수대 물구멍처럼 빨아들이는 힘을 상징한다. 또 궁예는 예측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실수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빌 허虛에 허수다. 알아. 한때 그와 같은 연애 행각은 실수였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책이 사실만을 다루지는 않지. 물론 저자의 약력까지 포함하여, 여기서는 약력略歷이 아니라 자아 붕괴에 가까운 약력弱力을 뜻한다. 그러면 책은 채찍으로 닿는 책策과 성채나 작은 성의 책柵이다. 곧 마음을 담는다. 그 마음을 내가 본 것이다. 위로며 자위다. 퀸시는 심연에서 탄식을 중얼거렸다. 퀸시는 어떤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구덩이임은 사실이므로 심연深淵이었고 밥을 삼키듯 탄식呑食하여야 했다. 괄호 열고 탄식에서 심연을 중얼거렸다? 밥을 삼키듯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구덩이임을? 이러나저러나 힘든 한 때였다. 내가 봤다니깐. 참. 그게 무슨 소용이람? 한 무리는 낮과 밤을 새우고 한 무리는 낮과 밤을 허물 뿐. 마음과 육체는 이미 푹 젖어 있었겠다. 시인은 ‘세우고’라 표현하여 무엇을 짜거나 깁는 행위로 표현한 것이겠다. 날을 샌다는 것은 날이 밝아 오는 것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