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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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8회 작성일 24-11-28 21:15본문
무법자
=최금진
시장에선 그가 가장 인기가 좋다
그의 연애담과 정치이야기는 기승전결, 같은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다
붙어먹었다,로 시작해서
모든 것이 다 말세라는 식의 결론도 피곤해지면
누운 채로 그는 땅바닥에 판본체로 ‘밥’이라고 쓴다
그러나 ‘밥’을 ‘법’으로 잘못 읽어도 상관없다
그에게 법은 밥이 되어준 적이 없었다
고성방가에, 노상방뇨에, 무단침입은 밥이 아니라 법에 해당하므로
그는 저녁이 되기도 전에 순경에게 질질 끌려간다
모여든 사람들은 까르르 웃는다
살짝만 건드려도 그는 욕설을 법 조항처럼 쏟아낸다
나도 신체의 자유가 있다아, 나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아,
허기의 깡다구다
깡다구의 허기다
그의 비극적인 연애담은
그가 불행한 동안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당분간 그는 시장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그의 이야기는 너무 직설적인 까닭이다
세상에, 연애와 정치를 혼동하다니!
밥과 법을 혼동하다니!
창비시선 280 최금진 시집 새들의 역사 32-33p
얼띤 드립 한 잔
시인 최금진의 시는 언제나 또 어느 것을 읽어도 후회가 되지 않는다. 우선 재미가 있다. 무법자, 물론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지면과 독자와의 관계를 밥과 법으로 대치하고 무법자와 같은 시장 안 술주정뱅이와 순경 혹은 독자와 대조를 이루며 글을 쓰고 있다. 법을 잘 지키며 사는 독자와 순경은 사실 밥이 뭔지 모른다. 술주정뱅이는 밥을 구걸하며 사는 것 같아도 판본체처럼 틀에 박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시장에선 가장 인기가 좋고 모범적인 삶을 이룬다. 다른 쪽 세상에서 안 알아주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그는 늘 연애담처럼 사랑을 갈구한다. 세상 정치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지만 내부적인 바름은 손댈 때 없는 완벽성이다. 언제나 신체에 대한 자유를 가지고 살지만, 또 언제나 고독한 것도 사실이다. 시는 늘 그렇다. 우리말이 참 재밌다는 것도 모음 한 끗 차이로 뜻이 갈린다는 데 있다. 밥과 법에서 ‘ㅏ’와 ‘ㅓ’의 차이 나는 ‘아’로 밥이 중요하다. 너는 ‘어’로 법이 중요하겠지. 我와 非我의 투쟁이 아니라 我와 語의 투쟁이다. 시인은 그야말로 허기며 깡다구다. 시인이라고 모두 글만 믿고 사는 사람은 없다. 글은 하나의 취미가 된 지 오래다. 밥을 제대로 먹으려면 글보다 경제적인 안정부터 쟁취해야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고성방가에 노상 방뇨에다가 무단침입과 같은 눈길은 얼마나 많았던가! 사람이 나고 제대로 서 있고자 한다면 법은 법이 아니었고 마구잡이식 시행착오와 신에 대한 도전뿐이었다. 누가 법대로 바르게 섰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불행만 있을 뿐이며 그 대가는 삶에 대한 지속과 목숨에 대한 안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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