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時가 없어진다면/ 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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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時가 없어진다면/ 김행숙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갔으니
8시처럼, 목요일 저녁처럼, 여름날의 긴 오후처럼 돌아오는 중 이겠군요
봄에 여름이라고 부르고, 여름에 가을이라고 부르고, 가을에 겨울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당신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둥근 것들, 해와 달,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는 구두들의 닳은 굽, 뉴욕제과점 모퉁이를 돌아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들, 자꾸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 그러나 나는 어느 샌가 한눈을 팔게 됩니다, 미안해요
그사이에 8시가 없어지면 당신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겠어요, 8시가 없어지면 8시 5분이, 9시가 없어지고, 다음 날 아침이 없어지고, 여름날의 소낙비가 없어지고, 가을날의 천둥이 없어지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없어지고, 겨울 눈꽃축제가 없어지고, 새싹이, 연둣빛 새싹이,
옆집은 한 달 보름째 빈집입니다, 세상의 모든 옆집이 빈집이면 내가 어떻게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어요
캄캄한 하늘에 당신이 무한한 원을 긋고 있는 중이라면
[출처] 에코의 초상/ 김행숙
나의 맘에 초인종을 달았습니다. 늘 부재중인 당신 때문에 어제는 바람소리에 당신인 것 같아 길게 두 번 울리더군요.
너무나 익숙한 부재.
빈집. 8시 . 무한한 원.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영원한 이유가 원을 그으며 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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