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드라이브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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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드라이브
=최금진
어떤 놈은 잘린 손가락처럼 생긴 이정표 따윈 믿지 마세요
뭐라고 써 있는지 아십니까, 공사 중, 우회하시오
우리 엄마가 맨날 관상 좋다고 말한 고종사촌은
서른두살에 죽었어요 휴일을 위한 댓가였죠
다음 모퉁이에 내려줄까요, 안드로메다성은 옆에
가보지 못한 길들은 불쏘시개로나 써요
내 고향은 우회전, 거기서 나는 웃어본 적이 없어요
지워진 눈 화장, 찢어진 속옷, 당신도 막차를 놓쳤군요
안개조심, 낙석주의, 일단 정지
지금 해야 할 일은 내일도 못하게 된답니다
빛의 속도로 달아나도 운명은 금세 따라붙죠
내 손금은 아버지와 똑같아요, 지독한 울보였겠죠
휴식이 온통 길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게 억울해요
발화점에서 당신을 내려드리면 될까요,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기술, 우리의 22세기에나 가능한 기술
주머니에 모래알처럼 남은 길일랑 탈탈 털어버리고
직진, 자동차를 먹고 자동차를 임신한 사람처럼, 직진
자동차에서 자동차를 출산하고 자동차로 살다 간 사람처럼
창비시선 377 최금진 시집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96-97p
얼띤 드립 한 잔
아무래도 시인은 휴일 비관론적 입장이다. 휴일을 이해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휴일은 시다. 그리움의 대상이다. 모처럼 찾아오는 휴일을 휴일답지 않게 보내는 일은 최악이다. 휴일을 한자로 빌려 쓴다면 休日, 사람 옆에 나무가 있고 그 나무 옆에 기대어 있든 서 있든 거저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그것은 나무처럼 없는 것이 되고 나무처럼 식물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니까 그것만 보아도 완벽한 상태다. 그렇지만, 휴일에 찾아오는 손가락은 어떤 놈의 손가락인지는 모르나 이정표 따라 거닐고 있다는 사실, 심지어 뭐라고 썼는지 분간이 안 가지만, 오로지 공사 중이고 자꾸 우회한다는 사실, 실례로 우리 엄마가 맨날 관상 좋다고 말한 고종사촌은 서른두 살에 죽었음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휴일에 대한 대가였다. 관상이 좋다고 한 것은 시가 멋지게 이루었다는 것이고 서른두 살의 의미는 아주 한창때임을 강조한 숫자다. 고종사촌이라는 말도 재밌다. 높고 으뜸인 그 죽음의 촌각에 선 휴일 즉, 똥 시니까. 다음 모퉁이에 내려줄까, 묻는다. 옆은 안드로메다 성이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속한 성운은 태양계로 내리비추고 있으니까. 객체는 거저 불쏘시개로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존심이라도 고향은 있어야 존재하는 것처럼 거저 우회전 웃을 일은 없고 지워진 눈 화장에 찢어진 속옷과 막차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는 검정과 내면 그리고 시기적절치 못한 죽음을 담고 있다. 안개 조심 아내 조심, 낙석 주의는 벼락치기에 머리 조심, 일단정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지금 해야 할 일은 내일도 못 하게 된다는 사실, 분명 내면 즉 얼굴은 바뀌어 있을 테니까. 빛의 속도는 빛의 속도로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다. 내 손금은 나를 낳아 준 아버지와 똑같다. 그는 지독한 울보였다. 그러니까 진정 시인이었다. 휴식이 온통 길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게 억울할 따름이다. 발화점에 당신을 놓아두면 만족할까, 공중으로 핑 날아오르는 기술까지 우리의 22세기에나 가능한 기술 말이다. 22세기를 보면 무슨 오리 떼처럼 보인다. 오리가 오리가 아니듯이 둘둘 뭉치는 바보도 이런 적은 없었다. 주머니 모래알처럼, 껄끄럽고 남은 길은 탈탈 털리고 나서야 직진 자동차를 먹고 자동차를 임신한 사람처럼, 자동차에서 자동차를 출산하고 자동차로 살다 간 사람처럼 말이다. 오로지 자동차 안에만 있다. 자동차는 하나의 구체다. 스스로 움직이는 어떤 율동처럼 이는 비합리적인 데다가 바깥이라곤 진정 걸을 수 없는 자구책도 아닌 자위적인 어떤 행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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