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고개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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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고개
=이영광
실제로 죄를 짓기도 하고 마음으로, 죄가 날 짓기도 한다 마음의 죄는 반쯤 흐린 날 구름들처럼 한량없다 나는 하늘의 배때기에서 오려내지 못할 구름이 없었고, 그것들과 무구히 뒹굴고 논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달콤하고 괴로운 죄 구름 계산 구름 고민 구름 그러나, 온 힘을 다해도 도려내지 못할 구름 깊은 곳이 있었다 발버둥 쳐도 낳지 못하는 죄 어미의 쭈글쭈글한 알집, 죄 이전의 불가능한 죄가 있었다 힘없는 것들의 진정 힘없음을, 짧아진 봄이 실로 길다는 걸 늙은 악마처럼 안다 죄짓지 못한 기적의 아지랑이 같은 힘으로, 따사롭게 연명하며 草根木皮, 그 고개를 또 넘어간다
창비시선 502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 34p
얼띤 드립 한 잔
마음의 봄은 언제쯤 올까? 구름은 어떤 모양이기에 깨어 있기라도 하면 계산할 수도, 계산을 치를 수도 없는 무수한 죄를 몰고 오기만 할 뿐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죄 이전의 불가능한 죄가 있었다. 그것은 조금도 깨뜨릴 수 없는 알집, 기존의 틀을 바꾸어야만 하는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입적은 늘 꿈으로만 끝난 것이다. 점점 짧아지는 봄, 점점 길어져만 가는 어둠에서 더욱 부추기는 건 죽음뿐이다. 실제로 죄를 짓기도 하고 마음으로, 죄가 날 짓기도 한다. 그런 죄를 싹 씻겨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도 안다. 그러나, 암과 같은 구름과 항암과 같은 구름으로 뒤엉킨 일상은 감옥이다. 검약과 청빈이 무엇인지도 깨우쳐가는 저 구름 계산 구름 고민 구름은 가벼워 가벼워서 인간계 고개를 넘을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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