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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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시감상)
까마득한 시절, 내가 자주 가던 단골집이 있었다. 안주시킬 돈이 없어 소주잔에 샛별 하나 띄우고 마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주인아주머니가 즉석으로 안주를 만들어 슬그머니 나에게 내밀었고 주인아주머니의 고마운 마음을 알기에 나도 염치를 내려놓았다. 어쩌면 단골손님과 주인의 관계는 또 다른 식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날, 그 단골집이 있는 동네로 갈 일이 있었다. 단골집 옆 극장건물이 철거되었고 그 조그만 가게도 아침이슬처럼 증발하고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내 마음속에 철거되지 않은 사람들, 그리움이 있다. 그러나 이 시를 감상하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단골이 되고 싶지 않다는 시인의 말,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는 시인의 행간을 고민하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다. 시인은 관계의 맺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너무나 많은 관계에 쇠사슬처럼 매여 허덕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 관계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끈을 놓아버리는 현명함도 필요할 것 같다.
(시인프로필)
2019년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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