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의 바깥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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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의 바깥 / 이혜미
눈 마주쳤을 때
너는 거기 없었다
물렁한 어둠을 혜집어 사라진 얼굴을 찾는 동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시선의 알갱이들이 쏟아진다 산산이 뿌려진 눈빛들이 나
를 통과하여 사라져갔다
나는 도망친다
빛을로부터,
눈을 감는 순간 빛은 갇히고 눈동자 속에서 서서히 죽어 간다 그건
서로에게로 건너가려는 시간들, 오늘 죽인 나비를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리는 일 새로운 명명법을 익힐 때 마다 공기의 농도가 진해져갔
다 점점 맑아지며 밖을 향해 솟아오르는 행성의 온도
유리로 만든 베일을 쓰고 대기권을 바라본다 나는 이곳에 색(色)을
짊어지러 온 사람, 얼음조각 속에 우연히 들어간 공기방울처럼 스스
로 찬란할 수 있을까 관여할 수 없고, 무엇과도 연관되지 않는 것들
이 있었다 그것을 만져보는 순간, 세계는 투명하고 위태롭게 빛난다
이제야 나는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눈을 감고
몸 안을 떠다니는 흐린 점들을 바라본다
발밑으로 빛의 주검들이 흘러내렸다
* 보라는 색깔, 색깔은 정치나 이념상의 경향,
보라의 바깥은 이도 저도 아닌 無나 진공상태,
全面에 흐르는 이미지 모두가 無 또는 진공상태를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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