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를 보면서/ 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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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를 보면서/ 강태승
나도 저 벚나무처럼 오지게 꽃을 피우고 싶다
손과 발 이마와 정수리에도 꽃을 달고 싶다
심장과 간 오장육부 어디든지 꽃 피우고 싶다
심지어 불안 우울 절망에도 꽃을 마구 달고
봄비 맞으면서 개울가에 당당히 선 나무처럼
나도 핏줄마다 뼛속 어디든 빈 곳 없이 피워
한나절이라도 벚나무처럼 환하게 서고 싶다
미치도록 꽃을 피우고도 올바르게 선 벚나무
환장하게 달고서도 한마디 말이 없는 나무
온몸이 부서질 듯 사지(四肢) 찢어질 듯이
보석 또는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수류탄처럼
제 안의 모든 것을 밖으로 던져버린 나무
나도 저렇게 하늘과 땅에 섰다가 가고 싶다
한나절이 아니라도 잠깐의 들숨과 날숨 사이,
개나리 진달래 목련 아니면 민들레 냉이꽃
논두렁 밭두렁이면 어떻고 외딴집이면 어떠랴
아무도 찾지 않는 암자 뒤뜰이래도 좋으니
제 꽃에 제 그림자도 맑게 빛나는 벚나무
그렇게 날 찾아오는 날이 오늘이면 좋겠다
아니 너도 이미 벚나무보다 많은 꽃을 달고
하늘과 마주친 천지를 맨발로 여행하는 중이다!
(시감상)
만원 버스에는 만 가지의 꽃나무가 서 있다. 때로는 앉은키로 풀처럼 창밖을 바라보는 수많은 꽃잎들, 잎을 펼치고 조리개를 열고 꽃망울을 들여다본다. 생김새는 만물상처럼 다양한데 표정은 오직 단 하나, 석상처럼 모두 무표정의 이름표를 단 근엄이다. 메스도 없이 속내를 갈라 들여다보면 천둥이 울리고 벼락 치던 날을 건너 한 송이 꽃대 올리고 싶었을 게다. 봄날의 그 향기도 이젠 검버섯을 먹고 자라 불 꺼진 화덕이다. 열기가 증발한 불 뺀 화덕에 빈 손을 가만히 얹는다. 따뜻한 온기가 혈관을 타고 심지를 돋운다. 발끝에서 부터 뜨거운 물줄기가 솟고 날개옷도 없이 굴뚝을 지나 아무도 몰래 수증기처럼 승천하는 중이다.
(시인프로필)
1961년 충북 진천 백곡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예바다』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만중문학상, 포항 소재 문학상,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백교문학상, 한국해양재단 해양문학상, 추보문학상, 해동공자 최충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칼의 노래』 등 디수의 시집을 발간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문예바다와 시마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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