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카스/ 황유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마라카스/ 황유원
설거지하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라카스 소리에 돌아봤는데
아내가 길게 썬 오이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소금통을 들고 가볍고 경쾌하게 흔들고 있었다
격렬하지만 가벼운 소리
개미들의 로큰롤
개미들이 적진을 향해 대규모로 행진하는 소리도
대지를 울리진 않고 대지를 간지럽히는 소리 정도겠지
심하게 간지럽히는 건 아니어서
까르르 웃으며 뒤집어져 대지의 내장이 튀어나오진 않을 정도
개미들의 로큰롤은
한밤중에 틀어놓으면 층간 소음을 유발하거나 잠을 깨우진 않고
어느 대낮 이국의 해변에 있기라도 하듯 스르르 잠이 오는
한밤에도 낮잠에 들게 하는 로큰롤
개미 대군이 소금 뿌린 오이가 담긴 법랑 그릇 안으로 쳐들어왔다가
연이어 소금 밟히는 소리에 취해
그만 모두 잠들고 말았네
(시감상)
내 귀를 파먹으며 울부짖는 소리, 심장을 도려내는 이명처럼 한여름날 자지러지는 매미 울음소리, 북편에 고치처럼 달라붙어 호곡하는 소리, 내 심연에 벌새의 날갯짓처럼 파장이 떨리고 있다. 그것은 나의 로큰롤이고 블루스고 컨트리, 재즈이며 유치환의 깃발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어둠이 이부자리에 누워 두 발을 뻗으면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 너머의 세계, 개미의 대군이 소금에 밟히는 소리, 그 법랑 속으로 온몸이 이완한다.
(시인프로필)
황유원 /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3년 《문학동네》 시 등단. 시집 『하얀 사슴 연못』 『초자연적 3D 프린팅』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세상의 모든 최대화』가 있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