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거나 말거나 / 이달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그러거나 말거나 / 이달균
골목길 미용실에선 수다꽃이 피었습니다
커트가 어떻고 파마는 또 어떻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끝나지 않습니다
어제는 모종비, 오늘은 가루비
미용실 앞 작은 텃밭엔 강냉이 새싹들이
이모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 구경 한창입니다
(시해설)
문태준 시인
동네 사람들의 단골집 미용실에선 손님 여럿이 모여서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다. 조금은 쓸데없는 말이 들어 있고, 또 조금은 쓸데없이 말수가 많지만 그 얘기가 꿀처럼 달기만 하다. 이런저런 얘기가 끝없고, 그 얘기 소리는 한데로 문 열고 나오듯 바깥으로도 들려온다. 바깥에는 비 자분자분 내리는데, 어제는 모종하기에 딱 좋은 비가 오고, 오늘은 가루처럼 잘게 부스러지듯이 비가 오고, 바깥으로도 들려오는 얘기 소리는 빗소리와 섞였을 테고, 얘기 소리는 빗소리가 되었을 테다. 미용실에서 이모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지, 그 얘기가 끝날 듯 말 듯 하든지 강냉이 새싹들은 마냥 비가 반갑고 맛보는 세상이 흥미롭기만 하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살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여길 줄도 알 일이다. 낱낱이 따지고 캐어묻고 살 수는 없으니. 시인은 시집을 펴내며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오늘은 또 말줄임표로”라고 썼다. 조금은 이렇게 살 때 아량과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시감상)
이른 아침 출근길, 객실 풍경은 의외로 단순하다. 눈 감은 사람, 휴대폰 검색하는 사람, 그사이 흘러가는 침묵을 배회하는 나, 직장에 도착하니 여직원들의 수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분주한 몸놀림, 로비에는 오가는 내원객의 걱정스러운 표정들, 어느 창구 앞 대기실에는 폭격을 맞은 듯 어수선하다. 출입문을 벗어난 한쪽 모퉁이에 금계국만 낯빛이 환하다.
(시인프로필)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1987년 시집 『南海行』과 『지평』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해왔다. '사라예보 윈터 페스티벌' 한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사)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