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서/홍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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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50629」
혹서/홍혜향
쌀통에서 쌀벌레가 기어 다녔다
에어컨 실외기가 종일 돌아갔다
여름형 여우꼬리선인장이 축 늘어졌다
어느 날 실외기실 문을 열자
불탄 숲이 보였다
뜨거웠고 타다 만 덤불은 새들의 둥지였다
검은 날개가 돋고 있었다
어미새가 흰 깃털 하나를 떨궈놓고 갔다
나는 고온에서 자라는 깃털이 궁금해 문 앞을 서성였다
실외기실은 초인종이 없어도
두드리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다
어느 날엔 문을 열자 심해동굴 같은 검은 눈이 소리를 질렀고
놀란 나는 문을 닫았다
네 식구가 있었다
나는 온열동물이 아니다 주인과 어떤 파동이 맞아 새들은 이곳에 집을 지었을까
좁은 가정은 40도를 잘 견딘다
다육의 잎이 돋는 동안
아기새들의 등에도 검은 잎이 돋았다
빛을 받을수록 검게 물든다
새로 돋은 잎은 하얗다
물금만 남아 있는 접시에 살며시 물을 부어 주었다
(시감상)
여름이다. 혹서기가 왔다. 어느 다큐에서 본 기억이 난다. 뜨거운 사막에서 사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심해 깊은 곳에도 생물이 있다는 것을, 유황이 끓는 온천수에도 박테리아가 산다는 것을, 관심을 두고 보면 모두 생명이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이 발견한 생명은 조롱조롱 자라고 있다. 혹서와 혹한은 생명의 조건이 아니다. 관심과 사랑이 최고의 생육조건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작은 배려가 불쑥 존경스럽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홍혜향 프로필)
월간 모던포엠 신인상 수상, 2023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홍혜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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