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와 어머니 / 핑크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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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713회 작성일 15-11-12 03:35본문
은행나무와 어머니 / 핑크샤워
은행잎은
늘 어지럼증을 앓으시던
어머니 얼굴을 앞세우며 가을을 알린다.
여름내 뒷마루에 그늘을 주더니만
찬 서리에 노란 낯빛이 되어
가을비에 젖은 짚가리처럼
이파리를 바닥에 떨구는 저녁이면
벼이삭 줍던 시름어린 손으로
노란 은행잎 한 장을 주어들고
하늘을 올려보시던 어머니 눈 속엔
파랗게 얼어 죽은 아들 얼굴 담겼었다.
어머니의 가을은
새악시같이 해맑은 얼굴로 오기도 하고
그렁그렁 눈물 맺힌 모습으로 오기도 하며
몰아치는 바람에 우수수 울며 오기도 했다.
가을비라도 내릴라 치면
온 마음 다 내어 주어버린 후
은행잎으로 수 놓은 창호지문을 바르시고
방안에 들어 앉아서는
해질녘
방안 가득차오는 저승의 햇살 맞이했다
그것은 자식을 잃은 사람들만의 햇살
淨淨한 눈물을 가슴으로 짓누르면
짓무른 눈가에는 아픔의 江이 흐르고
강 깊숙이 가라앉힌 고뇌의 돌덩이는
더러 물고기 되어 튀어 오르기도 했다.
올해도
밤바람에 떨어지는 은행잎 소리에
나는 어둠을 저어가며 어머니에게 향하고
울어대는 풀벌레소리는
빗방울 같은 나의 밤을 끌고서 가면
사립문에 걸린 마른 햇살보다
오래 버티던 은행이파리 마침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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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의 슬픔이
온통 은행잎으로 고요한 낙하를 해서
눈물을 닮아가는, 화자話者의 빈 가슴에
가을처럼 쌓이는 거 같다
나는 아이를 한 번도 안 낳아 보아서,
이런 아픔을 다만 짐작만 할 뿐이지만
슬프도록 처연悽然한 심사도 때로는
시라는 옷을 입고,
이렇게 고울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나는 시를 감상하며, 가급적 다른 이의 시는
떠올리려 하지 않는데
(즉, 서로 다른 시 상호간 감정 이입移入을 삼가하는데)
오늘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다
- 왜?
시의 소재素材가 판이하게 다르더라도,
주제의 주파수周波數가 거의 같은 시를 드물게 만났을 때가
그러하다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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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 문태준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 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나무가 황금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연못 같더라
황금빛 잉어 비늘이 물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있더라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내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다 가고 싶더라
Gold Leaves
댓글목록
湖巖님의 댓글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의 소재가 음악과 어우러져 가슴 시리게 아름답습니다
감상 글도 왼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군요
지금 은행잎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도로 위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으스스 빈가지가 드러나곤 합니다
이른 새벽 좋은시 좋은 음악 감상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암드림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잎에 관한
숨막히는 비유를 통해,
펼쳐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극진합니다
귀한 말씀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