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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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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084회 작성일 16-04-28 15:34

본문

거대한 뿌리                                      /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남(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四年)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천팔백구십삼(一八九三) 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英國王立地學協會會員)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世界)로
 화하는 극적(劇的)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無斷通行)할 수 있는 것은 교구꾼,
내시, 외국인(外國人)의 종놈, 관리(官吏)들 뿐 이었다 그리고
 심야(深夜)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闊步)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奇異)한 관습(慣習)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閔妃)는 한 번도 장안외출(外出)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光化門)네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이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女史)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進步主義者)와 사회주의자(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統一)도 중립(中立)도 개좆이다
은밀(隱密)도 심오(深奧)도 학구(學究)도 체면(體面)도 인습(因習)도 치안국(治安局)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 일본영사관(日本領事館), 대한민국관리(大韓民國官吏),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無識)쟁이,
이 모든 무수(無數)한 반동(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철근(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 감상평

 이 전에도 몇 차례 읽을 때, 그저 시큰둥했거든요.
'비숍' 여사의 조선기행기는 모모씨 레포트 대필용(?) 자료 탓에 인상 깊었던 책입니다.

간만에 편한 시간이라, 연산홍 화단 앞에 똥폼으로 쭈그리고 앉아 다시 읽는데,
아, 기미, 기미라는 게 오더군요. 제가 김수영 시인님이 되어서 쓰고,
제가 쓴 글에 푹 빠져 있는 '흐리멍텅',  - 먼 말? - 어제 잠도 푹 잤는데 말이지요. ^^

시인이 어떻게 감정을 시편으로 승화시키는지도 침입해옵니다.
생계형 시와, 생존형 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합니다.
거대한 뿌리, 희미하지만, 이제 보입니다. 쬐끔 보여요. ^^
추천0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실, 오늘 까지 이 땅을 지켜온 건 그 무슨 위정자들도 아니고,
철새 정치꾼들도 아니고, 재벌이름의 돈놀이꾼들도 아니고, 종교장사꾼들도 아니고,
각종 사기. 협잡꾼들도 아니고,
오로지 민중이란 거대한 뿌리였지요

시대를 질타하고 새로운 시대 정신을 만들어 갔던,
시인 김수영

망가질대로 망가진, 이 미친 시대에도
그런 시인 한 분 있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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