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판의 곡선이 겹치는 동안 / 장이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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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현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806회 작성일 17-06-20 10:35본문
[월간 조세금융 2017. 7월호]
계란판의 곡선이 겹치는 동안
장이엽
트럭 위에 계란판을 쌓고 있는 남자
호잇~~짜 후잇~~짜 추임새를 넣어 가며
흔들 산들 리듬을 타고 있다
아슬아슬 높아지는 탑에 음표를 걸어 주는
저 흥겨운 몸짓,
멀뚱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계란판 쌓는 데도 수가 있어요
곡선허고 곡선이 만날라도 리듬이 필요하당 게요
신명은 없고 신중만 있으면 알이 다 깨져 버리지라
야무진 입매로 지나가던 곡선 두 줄이 활짝 열린다
신념이 신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뻣뻣하게 굳어 가던 나
오래된 철심 하나 뽑아내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 장이엽 시집 『삐틀어질 테다』(애지, 2013)에서
[감상]
세상에 노력없이 거저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곡선과 곡선
마음과 마음을 잇대는 일이 어디 그냥 이루어지는 일인가요
쉬워 보이는 계란판 하나 쌓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고 리듬이 필요한 법입니다
부질없는 힘 빼고 신명을 실어보세요
사는 일 또한 그와 같습니다
(양현근/시인)
댓글목록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명이 없는 신중, 폐부를 시원스레 꿰뚫는 한 마디이네요.
그야말로 깊숙히 박힌 철심을 단번에 빼내어 줍니다.
화물차 중 제일 조심스레 움직이는 차가 계란 실은 차라던데.
계란 실는 그 남자의 즐김이 가히 예술인 지라, 즐기는 자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했지요.
신명나는 한 마당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