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작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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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작>
허공버스
김대호
허공은 만원버스다
발 디딜 틈은 고사하고 숨쉬기도 힘들다
곗돈 떼인 여자가 친정 언니에게 무선 전화를 한다
말을 내보내는 동안에도 여자의 몸은 점점 뚱뚱해진다
머리에 파일로 저장된 분노는
압축이 풀리면서 온몸으로 번진다
여자의 입에서는 속기로도 받아적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일부만 언니의 귀에 담기고 나머지는 허공을 탄다
다음 정거장에서
무단 질주하는 카 오디오의 고음이 승차한다
심지어 소리가 되지 못한, 그러나 충혈된 눈빛으로 읽을 수 있는
억울하고 치욕스럽고 한 맺힌 생각들 승차한다
잠자는 사람의 헛소리까지 보태진다
이제 허공버스는 멸균 안 된 말과 생각의 승객으로 인해 고약한 냄새까지 난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퀴가 펑크가 날 지경이다
중력도 없이
비어 있다고 믿었던 허공
죽은 다음에 내 혼의 거처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 그곳,
무색무취의 노선을 오가는 버스는 지금 만원이다
김대호
2010년 수주문학상 수상, 2012년 《시산맥》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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