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공모전 당선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공모전 당선작

  • HOME
  • 문학가 산책
  • 공모전 당선작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주요 언론이나 중견문예지의 문학공모전 수상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04회 작성일 19-01-10 11:36

본문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조온윤

 

 

할머니가 있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가판대 위 물고기의 눈알처럼 
죽어가면서도 시선을 잃지 않아서 
그 아득한 세월의 흔들의자에 앉아 여전히 
이승의 장경을 관망하고 있는 

아무르 강가에서 늙고 지친 호랑이가 
밀렵꾼들에게 가족을 잃은 마지막 호랑이가 
수면 위로 얼굴을 비추는 순간 
마르고 거친 혓바닥을 내밀어 적시는 순간 
늙은 호랑이는 마주하게 되지 
마지막 할머니를 

초원 위를 뛰어가는 사슴들을 멀리서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위구르족 여자의 시선을
그 시선의 수심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어서 
심해어의 눈처럼 
어딘가에 있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언가 보고 있겠지만 무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초점이 없이도 자전하는 지구본처럼 

물고기의 눈알이 빨간 국물에 적셔졌다면, 지금쯤 식탁 위에서
눈알을 도려냈다면 어두컴컴한 하수구 어디쯤에서
삼켰다면 고래의 뱃속에서 
여전히 관망하지 
세계를 
그곳의 공감각을 

머지않아 모든 할머니들이 사라진 시대가 온다고 해도
목을 축이러 찾아간 아무르 강가에서 
저 멀리 초원 위를 뛰어다니는 사슴들밖엔 바라볼 수 없다고 해도

호랑이는 그 눈을 죽는 순간까지 기억하지 
죽은 뒤에도 시선을 잃지 않아서 
흔들의자는 혼자서도 오랫동안 흔들거리지 

 

---------------------------------------------------------------------------------------------


 [심사평] 자연의 냉혹한 질서와 죽음의 공포, 삶의 애착을 무심하게 바라봐



신춘문예 시 심사는 3∼5편의 완성도가 높고 고른 투고작 중에서 투고자의 역량이 집중된 ‘한 편’을 선정한다. 우리 시단에 즐거운 자극을 줄 새로움도 기대하게 된다. 이런 점이 이른바 신춘문예 유형을 형성하게 되는 것 같다. 예심에서 올라온 13명의 작품 중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그 ‘한 편’은 ‘사돈’ ‘헤드셋 소녀’ ‘바닥 꽃 핀다’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등 4편이었다.  

‘사돈’은 사물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소리로 듣고 냄새로 감지하는 빼어난 공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만물이 ‘사돈’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귀로 듣는 말에서 벗어나 세계와 온몸으로 교감하려는 태도가 주목할 만했으나 비약이 심한 몇몇 문장들은 부자연스러웠다. ‘헤드셋 소녀’는 헤드셋 음악에 스스로 갇혀 지내는 소녀의 내면적 움직임을 체험시키는 감각적인 이미지와 그 음악을 연상시키는 스타카토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표현 기법만으로 본다면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소녀의 목소리에서 어른의 관념이 감지되어 아쉬웠다. ‘바닥 꽃 핀다’는 냄비에 끓는 물에서 단단한 바닥을 뚫고 올라와 꽃피우는 봄의 에너지를 즐겁게 상상한 점, 일상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육화시킨 점이 볼만하였으나 미적 인식보다 아이디어에 의존한 점은 한계로 지적되었다. 


숙고와 논의를 거쳐 죽기 직전에 할머니가 바라본 풍경과 할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는 호랑이의 시선을 스케일이 큰 상상력으로 진술한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는 지상의 수많은 삶과 죽음을 자신의 몸으로 겪어낸 것 같은 할머니가 자신의 마지막을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개개의 삶을 넘어 생태계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움직이는 호랑이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다. 서로 얽히면서 소멸되어가는 두 시선은 자연의 냉혹한 질서와 죽음의 공포, 삶의 애착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떤 거대한 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우리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소재와 한 편의 시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큰 주제로 인해 관념에 떨어질 위험이 있으나 세밀하고 끈질긴 상상과 삶과 죽음의 순환을 꿰뚫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통찰이 그런 우려를 잘 떨쳐내고 있다.

심사위원 : 정호승·김기택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84건 1 페이지
공모전 당선작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8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7 1 04-11
28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 1 04-11
28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 1 04-02
28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 1 04-02
28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 1 04-02
27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 1 03-27
27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 1 03-27
27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 1 03-27
27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 1 03-27
27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 1 03-27
27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 1 03-13
27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1 03-13
27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 1 03-11
27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 1 03-11
27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 1 03-11
26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 1 03-11
26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 1 03-11
26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 1 03-08
26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 1 03-08
26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 1 03-08
26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 1 03-08
26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 1 03-08
26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 1 03-08
26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 1 03-08
26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7 1 02-07
25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0 1 01-31
25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98 1 01-31
25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93 1 01-31
25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0 1 01-31
25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7 1 01-31
25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1 1 01-24
25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8 1 01-24
25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8 1 01-24
25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3 1 01-24
25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5 1 01-20
24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6 1 01-15
24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2 1 01-15
24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2 1 01-15
24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0 1 01-15
24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6 1 01-15
24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65 1 01-15
24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9 1 01-15
24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1 1 01-15
24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7 1 01-15
24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4 1 01-15
23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2 1 01-15
23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2 1 01-15
23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7 1 01-11
23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6 1 01-11
23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8 1 01-11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