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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시산맥> 신인문학상 / 박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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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03회 작성일 19-02-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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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에서* 4편 / 박민서

  

 

   벽에 찍힌 손바닥은 붉은 비명이다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천천히 시드는 비명, 동여맨 손목들, 실핏줄처럼 아주 느리게 담을 넘고 있다

 

​  지문 없이 찾아갈 수 없는, 먼 시대를 떠돌고 있는 언어, 손가락마다 불꽃을 달았다 벽을 밀어내고 있는

기원이 종유석처럼 자란다 말이란 다 자라지 않으면 더듬거리는 법이다

  손을 맞대는 것으로 만날 수 있는, 벽은 얼마나 오랜 연대가 시큰거리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는 지문들이었을 뿐

  동굴처럼 웅크리고 있는 부족

  손목을 관통하고 있는 터널

  명칭을 나누어 가진 관계가 있었다면 한 손목을 잡고 위로하는 다른 손목을 볼 때도 있지, 손톱이 자라지

않는 손바닥 벽화, 마주보지 않고서는 손을 맞출 수 없어 여전히 벽을 향해 있다 두 번 다시는 접지 않겠다는

맹세를 보았다

  온갖 말들이 들락거리는 관절, 말은 모두 벙긋거리며 동굴을 지나친 것들이어서 악담과 정담이 함께 있다

  며칠 악담으로 시큰거리는 내 손목이 아프다

 

​  * 스페인 북부 지역의 카스티요 산에 있는 동굴 속 채색벽화.

 


손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연필 한 자루엔

몇 개의 얼굴이 들어 있을까

남자가 더듬는 손끝에서

여자의 얼굴이 돋아나오고 있네

태초에 신의 말씀으로

천지와 동물과 사람을 지었다고 했으니

말씀은 검은색이네, 흑심(黑心)이네

신은 늙고

초라한 형상을 하고

마로니 그늘에 앉아서

제가 빚은 젊은 처녀를 힐끗거리고 있네

신의 손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연필은 깎이게 되지만

지나온 것들은 평면이었네

자기 얼굴을 쓰다듬을 때는

난감하거나 피곤한 얼굴

손에는 표정이 묻어 있네

마른 빵을 맛없이 조금씩 뜯어 먹고는

- 지 어미와 꼭 닮았어

손이 기억하는 얼굴이 있었네

액자 속의 화분처럼

얼굴이 옮겨가는 것을 보았네

쓱쓱, 그가 도화지 귀퉁이에 리본을 긋네

여자가 뚜벅뚜벅

영안실로 걸어 들어가네

 

   

 

  물소리

 

 

깊이 숨어 사는 물은 맑아요

끊어지지 않은 물소리는

장인의 솜씨

그곳이 물을 닦는 공장일 거라는

추측을 해보곤 합니다

 

물이 물을 닦는다는 소리

흘러가면서 앞과 뒤를 깨워줘요

 

물 주름을 벗겨내며

물을 닦는 바람을 바라봐요

태풍에 넘어진 나무의 잔영을

소소한 빗줄기의 흔적을

그늘에 구겨진 혼잣말을

누가 떠밀지 않아도

둘둘 말려가는 것을 봅니다

 

물이 물을 닦는 이유는 무엇인지

가끔 흙탕물 세제를 푸는 일도

구멍 난 나뭇잎 몇 장 띄우는 일도

물이 물을 닦는 일이에요

 

숨어 있는 물을 처음 만나는 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내 얼굴이 사실은

모두 처음 만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 사이에 흐르면서 구겨지는

얼굴의 재촉,

되돌아가지 못한 소리들

얼굴은 가장 맑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기도 했어요

 

손으로 휘이 저으면 생기는 물의 페이지

물이 내 얼굴을 닦고 있어요

 

 


   낱말 퍼즐게임


   우리 두 사람은 H열 좌석에 앉았다 그도 나도 한()이나 홍()이 아니다 좌석의 엉덩이 자국은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니까


   나의 첫 낱말풀이는 G열 왼쪽

   첫 번째 칸에서 시작한다

   저기 D열의 가운데 남자는 머리가 솟았으니 고(), 뒤쪽 F열의 남자는 등받이를 발로 쳐대니 굽은

다리 장()이 분명하다 중간에 낀 E열의 여자는 팝콘을 한 주먹씩 입속에 넣으니 권()인데, 주먹이

가득 찼다는 뜻일까 아니면 주먹을 부른다는 뜻일까 두 갈래로 땋은 머리 B열의 왼쪽과 투블록컷 머리

오른쪽과 입맞춤을 하니 호()가 맞다


  눈동자를 굴리는 스크린은 우리 눈을 구슬처럼 가지고 논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많은 말을 한마디 대꾸도

없이 들은 적 없다


  누군가의 머리와 나의 꼬리가 만난다 각각 생각이 다른 세로의 첫 글자와 가로의 첫 글자는 닮았지만 끝내

연결 안 되는 좌석이 있다

  비어 있는 번호, 도무지 풀리지 않는 퍼즐 판, 빈 의자에 구름처럼 가볍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지만 한 조각

퍼즐 속에 꽉 끼워져야 한다


  가로와 세로를 따라가는 오후의 퍼즐을 따라가다 보면 비상구는 이쪽입니다 뒤집힌 퍼즐 판의 낱말들처럼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제의 미로

 

 

침엽의 미로에 서 있다

 

바람의 모양으로 무늬가 들어 있는 미로

아이는 헤매는 것으로 길을 부르고

울음으로 조형의 벽을 삼는다

 

키가 보이지 않는 정원, 길은 푸른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아이는 왜 작아지는 것으로 크지 않는 건지

젖이 아프다

 

젖을 물리는 순간 출구와 입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사육된 정원은 모두 손등이나 손끝을 닮는다

뱀처럼 구부러져 있는 나무들

울음소리를 따라 점점 미로가 되어 간다

 

표정은 사라진 얼굴이 되고

대신 구겨진 미로들이 얼굴로 몰려든다

 

구부려 누운 잠은 계절을 보려고 하는 것

어느 틈에 자라는 전정으로 매듭과 키를 정한다

 

동맥(動脈)은 종착이 있는지

젖어버린 발바닥은 안 보이는 키를 자라게 하는 정원일 뿐

바닥으로 바쁠 뿐

 

울타리가 있는 정원은 갖지를 못했다

입구와 출구가 있어 계절은 몸을 바꿀 것이고

접혀지거나 지나가는 것을 지우거나

발소리 숨어버린 어제의 길만 남아 있다

 

아이가 없어 젖이 아픈 시간이다

 

 

 

 

 

[수상소감]

 

새로 산 신발 뒤꿈치의 손가락 틈

 

잘생긴 막대기 하나로 한여름 들창을 받쳐놓았던 적이 있다

막대기는 갓 더위를 받치고 있었고 늘어진 포도나무를 받쳤고 오래전에는 새를 잡기 위해 바구니 옆구리를 받치고 있다가 익어가는 들판의 논을 받쳐놓기도 했다

한 번도 앞으로 돌아올 수 없는 벽의 뒷면엔 보여주기 싫은 크레이터가 가득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사이에는 동네 아이 하나가 자치기로 동심을 받쳐놓았고, 빗방울이 빗 소리를 받쳐놓아 쉬었다 갔다 아버지 대신 굳은살 박인 어머니 손은 반평생 자식을 받치고 있어 한때 기울어진 나는 물구나무를 서서 지구를 받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시에게 말을 걸었다 몽환적인 곳에서 그 대상을 부를 때는 땅에 귀를 낮게 기울여도 표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산길을 혼자 걸어가다 보면, 보이는 대상이 너무 많아 빠른 속도로 쫓아가 손으로 잡아보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잡히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수없이 버렸던 시들, 압력밥솥에 마음을 꾹 눌러두고 배회할 때마다 미련 없이 시는 아침에 뜨거운 수증기로 다시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는 나와 은유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첫발을 내디뎠다 그물을 어깨에 메고 그 표상을 찾아다닐 것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어떤 표정을 찾고 있었다 그때 메시지 잘하셨어요 등단에는 운명 같은 게 있나 봐요 좋은 시로 보여주세요 축하합니다그때 실감이 났다 용기가 생겼다 책상에 등을 말고 앉아 있는 몸에 태엽 감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물구나무를 서도 나를 받쳐줄 막대기 하나 생겼다

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게 도와준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시를 놓을 때마다 초심을 불러주곤 했던, 하늘에서 내려다보실 김석환 교수님이 많이 기뻐하실 것 같다 끝까지 믿고 함께해준 우리 가족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명지대학원 동기들, 스터디그룹 케빈과 빛별 친구들, 오랜 문우 써니 언니들, 토즈반 문우들, 시와 운명으로 만난 친구 양비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당선 소식을 전해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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