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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산맥> 신인문학상 / 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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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71회 작성일 19-02-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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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4/ 한영미

 

 

라면으로 첫 끼니를 때운다

바닥엔 파지처럼 굴러다니는 쓰다만 이력서들

열정 하나로 통했던 시대는 갔다

모래 수렁을 떠도는 비문의 유령들,

오늘은 이 회사에서 내일은 저 회사에서

같은 얼굴을 만나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래바람은 깊은 수렁을 덮기도 하고 만들어내기도 한다

빠져나오려는 안간힘은 처음 몇 번의 좌절이면 족했다

움직일수록 흘러내리는 모래의 깊이는

늪처럼 빠져들고, 바닥처럼 측량되지 않는다

입구가 사라지는가 하면 출구가 봉합되기도 한다

수렁이 무덤이 되는 것은 한순간,

어제도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왔다

가수와 진수가 구별되지 않는 교묘함에도

구덩이를 채운 숫자는 갈수록 넘쳐난다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쌓여가는 빈 소주병이

발굴된 유물의 전부가 될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빠져나올 수 있는 꿈이면 좋겠다

남은 국물에 식은 밥 한 덩이 말아 시어 빠진 김치 쪼가리로

후르륵 위장을 채운다

내비게이션 토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낯선 얼굴들이 모래 수렁에서 길을 찾고 있다

  


 

집 나온 고양이

 

 

이빨과 발톱 세우고 울고 싶을 땐 언제든

울 수 있는 길냥이가 되고 싶어요

울 수 없는 시간이 낭만인가요

안락을 위해 몸을 둥글게 말아 가장

보드라운 털을 내어 주어야 하는 일과

희롱하는 손끝에도 냐아옹!

그대 기쁘게 하는 콧소리,

그때마다 털이 바짝 일어서요

손끝을 와락 물어뜯고 싶어져요

좋은 옷, 머리에 달아준 분홍 꽃리본

날마다 입김 불어 건넨 사랑한다는 말,

연애를 위해 시를 쓸까요 시를 위해

연애를 할까요

너는 나라는 말의 함정에 한 번쯤

빠져본 기억 있다면 누구든 알 수 있어요

이제 그만 소설적 진실*을 밝히고 싶어요

밤거리를 걸어요 온 털끝 세우고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걸어요

상대가 놀라도록 두 눈 크게 떠요

어두울수록 빛나는 광채

집 나온 고양이에게 더 이상

집은 필요 없답니다

  

*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차용.

 

 

 

 

굴레방다리

 

 

아현동 굴레방다리 하면 목줄이 떠오른다

둥근 모양이 세 개나 들어가는 아현동이란 지명이

입 벌린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그들의 허기진 뱃속 같아서,

소가 벗어놓고 와우산으로 누웠다는 굴레가

골목 어디쯤에선가 나타나

기다렸단 듯이 목을 거칠게 잡아챌 것만 같은 동네

흑백 사진 속 배경으로 만나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목줄 덕으로 어렵게 대학까지 마쳤다

가난은 꿈도 사치라는 말을 배웠지만

철수된 고가 다리처럼 빠져나와 모두가 잘살고 있다

날마다 걷던 웨딩드레스 거리는 왜 그렇게도

퇴락한 슬픔이었는지,

조화롭지 못한 방석집과 한데 나열되어

흰빛이 눈처럼 순백색이 아닌 술집 여자들의 덧칠된 화장처럼

이물스러웠던 기억

밀폐된 어둔 공간을 찾아들던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의 술 취한 모습과

그들의 손을 잡아끌던 눈빛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 화려한 여자들과 마주칠 때면

그녀들이 입을 먼 미래의 웨딩드레스가 궁금해지곤 했다

눈부신 조명 아래 여전히 웨딩 타운으로 화려한 동네

이따금 생각나는 곳이지만 그와 동시에 목부터 죄어드는 곳,

모두가 치열했던 시절이 재개발된 모습으로 지워졌다

하지만 아현동 굴레방다리란 발음 속에서 여전히 되살아나는

허기와 굴레

 


 

 

목관(木棺)

 

 

끝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지

책장을 넘기듯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하루

난 나의 변화무쌍한 책을 읽느라

어느 날 갑자기 너의 책이

찢길 수도, 찢겨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치 못했어

오늘 아르카디아에 살고 있다면

내일도 당연히 붉은 태양 아래 짙푸른 땅 밟으며

황금 같은 시계 종소리에 맞춰 눈을 뜨리라고 생각했어

날마다 안부를 묻는 건강한 목소리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도

인사도 생략한 채 보냈을까

꽃상여에 묻혀 떠나는 너 보지도 못하고

오래도록 빈 하늘 바라보며 바다만 그렸어

어디든 하나로 이어져 있으리라고

이제는 나란 책을 펼치면 매 페이지에

부록처럼 달라붙어 있는 목관과

짧은 한 줄의 글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 작품에 쓰인 글 차용.

 

 

  

 

일대 일 대응설*

  

 

꽃을 꽃이라 부르지 말자

세상 만물 이름 정해지지 않은 건 없다지만

밟고 가는 사람들에 따라 산길은 모양이 달라지지

없던 길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던 길도 초야에 묻혀 사라지기도 하지

같은 강물에 두 번 몸 담글 수 없듯이

네가 아는 나도 네 앞의 나일 뿐,

합목이 된 나무마다 비틀린 모양새를 보면

제각각 다르지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뜨겁게 타올라

엉켜 붙은 절정의 모습도 있지만

겨우 무늬만 하나인 채로 합목이라 불리는 것도 있지

상대의 손끝 아래 세상에서 가장 정숙한

불감의 여자일 수도

가장 현란한 요부일 수도 있어

여기저기서 부르는 욕보다 못한 이름에 갇혀

그 값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사람들


꽃을 꽃이라 가두지 말자

오늘도 내일도 그 이름 밖으로 모두가 흘러가지

길도 나무도 강물도 그리고 너도

 

 * ‘모든 사물과 개념은 일대 일 대응관계’. 아리스토텔레스.

 

 

 

 

 

[수상소감]

 

 

불편한 시와 손잡고

 

시와 오래된 연인처럼 살아왔습니다. 벅차게 가슴 뛰던 날도 있었고, 눈빛만 마주 보아도, 손끝만 닿아도, 하나로 소통되던 날도 있었습니다. 지치지 않고 머물러 주어 고마웠다고, 다정한 인사 건네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좋았던 시간보다 힘겨웠던 시간들이 많았지만, 주저앉는 순간마다 다른 의미를 생성해 빈손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던 숱한 날들이 떠오릅니다.

 

이번 등단을 계기로 십여 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모해도 열정은 살아 있었던 그때 정신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불편한 시를 쓰겠습니다. 지혜와 성찰을 통해 나 자신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깊이 새기겠습니다. 비바람과 햇살과 삶의 유의미한 부스러기를 줍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온몸으로 시를 쓰라던 김수영 시인의 말을 떠올립니다.

자유하는 시의 정신과 삶이 한 몸이 되는 날까지 오늘을 에너지 삼아 걷고 또 걷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직접 전해주신  '시산맥' 대표님과 부족한 글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먼저 감사 인사드립니다.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임정일 선생님과 허경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강산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함께해온 예술촌 선배들과 문우들 사랑합니다. 문향 가족, 소중한 곰시 동인 역시 동행이 든든했습니다. 직장 일과 시 작업으로 늘 바쁜 아내와 엄마를 한결같이 지지해 주는 내 소중한 가족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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