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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시로여는세상》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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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41회 작성일 20-04-0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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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시로여는세상신인상 당선작

 

                                           

둥근 방을 꿈꾼 적 있다 (4)

 

   조효복

 

 

 

스물은 꽃 아래 여우처럼 환하고 천진한 난민처럼 웃는다

향기를 입에 문 붉은 잇새의 부러진 가지들이다

맛과 향이 부풀어 오른 기억을 따 먹는다

 

5월의 포도나무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낯가림이 심한 포도 새순은 붉었다고 기억한다

방 한 칸을 꿈꾸는 스물의 시선은 멀고도 가까웠다

 

강줄기를 바라보면서 오필리아를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동시에 물로 뛰어들었던가

포도 꽃가지를 안은 우리는 물결 위에 몸을 뉘었다

상실은 멀리서도 크게 보인다

 

포도밭은 침수 직전이었고 이제 막 형태를 갖춘

여린 포도송이들이

솎아져서 떠다니고 있었다

집을 잃고 떠도는 우울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포도 맛을 결정하기에 우리의 혀는 까다로웠다

정착지를 꿈꾸며 떠도는 방들

꽃향기가 전부인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음뿐인 검은 마을에서도 열매들은 새로 태어났다

 

혼자가 두려운 심장들이 흰 미사보에 싸였다

우리는 이제 농익어 단맛으로 울기로 했다

여우들이 먼 꽃으로 자라며 울음의 방으로 익어갔다

이파리 아래 들썩이는 포도의 기척들

세상의 숨겨진 방들이 포도를 부추긴다

 

   

태어나는 색

 

 

 

곡선을 좋아해 무한정 구부러지고 확장되잖아

난해해지지만 끊어지지 않잖아

지루하지 않잖아

자주 그러지는 표정들 그건 오로지 손목의 일이야

 

꽃이 지워진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얼굴의 출처가 분명해진다

몸속 어딘가에 각인된 표정

사라진 얼굴이 꽃의 말을 하고 있다

 

상냥한 꽃들이 시간이다

그늘에 기대어 한꺼번에 발화 중인 맨드라미

그림자마저 붉게 물든 오후

 

밤이면 더 선명하다 달을 가두었구나

 

펼쳐진 흰 여백을 배회하는 선들

네가 긋고 간 선홍빛이 흥건한 난화亂畵

태생이 붉어 달이 스민 몸에서 보랏빛 정맥이 퍼진다

온몸을 타고 오르는 은빛 바늘귀를 열어

재즈풍의 리듬을 타고 붉은 파동

창공을 딛고서 굽이치고 있는 물결들

 

중심을 잃고 발을 빠트린 몇 개의 통점

아픔이 아픔을 앞질러 빠르고 강하게 꽃으로 건너간다

그리움은 또 다른 색의 발현이다

 

   

 

플레이어의 하루

 

 

 

나는 열한 개의 샷건(shotgun)

암살 플레이어로 자랐어

열여덟 엄마에게서 처음 생겨난 주력 포지션이지

가끔은 병사를 이용해 엄마를 괴롭히지

엄마는 파괴해도 자꾸만 소환되는 몬스터야

나는 불쑥 태어났다가 용감하게 삐뚤어지지

총알만큼 빠르고 비교적 정확하지

골목을 차지하고 숨을만한 담벼락을 알지

편의점을 공격해서 아이템을 저장해

치약을 먹인 아이들을 교란시켜 연료를 비축하지

우리는 하얗게 토하며 욕조 아래로 흩어지지

어두워지면 나의 생존자는 불 꺼진 빈집

잠긴 문도 발길질도 두렵지 않아

엄마의 먼지 낀 화장대 옆

모니터에 푸른빛이 들어오면

살해되고 되살아나는 내가 그곳에 있지

언제나 호출이 가능한 내 병사들이 사는 곳

그 방은 춥고 쓸쓸해

쌕쌕 전투력을 잃었어

오래된 기침에선 보랏빛 쇳소리가 나

긁히고 멍들고 허기진 날 잠이 잔등 아래로 시리게 밀려와

지친 날개를 내려놓고 우린 노래를 하지

홀로 잠들 거야 내성 강한 외로움에 익숙해

어제의 약속과 결심들이 깊은 잠과 함께 무너지지

플레이어는 나를 이해하고 나는 산탄총을 이해해 

 

  

 

수건의 행방

 

 

 

흙벽 안쪽은 수용소였다

깨알만한 찰흙 병정들 일정한 간격으로 빽빽이 도열 중이다

횡대와 종대에 집착했다 손톱으로 벽을 그어 패턴을 새긴다

쉬지 않는 입, 말과 찰흙으로 운동장을 빚는다

골목을 빚고, 놀이터를 빚고, 소리를 입힌다

세상에 없는 그들만의 음역이 노래가 되어 태어나는 오후

미술치료 수업 시간

부재하던 온기가 주입 중인 치료실

흙벽에 갇힌 아이 오래된 슬픔을 고백 중이다

 

처음 만난 아이들이 웃는다

다정하게 건넨 말이 무색하다

선수끼리 왜 이래 나는 지고 있는 중이다

 

가끔 사라지던 누군가의 생리대와 지폐를 펼쳐놓고 낄낄대던 방

기이하게 뒤틀려 교실을 점령하고 문에 마법을 거는 아이들

수건의 행방 따윈 궁금하지 않아

빙빙 돌다 버터가 되면 우린 서로를 퍼먹으면 돼*

나만 모르는 수건의 행방 끝없는 수건을 돌리며 술래가 되는 시간

 

긴 꼬리도 잡히지 않는다 발견한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음을 읽는 순간 잡히고 만다 너를 놓아주면 슬픈 척하는 꼬리

꼬리를 말아 쥐고 서로를 으깬다 골목이 하얀 거짓말을 뱉어냈다

 

다시 보육원에 맡겨졌다 마당 안, 스쳐 간 얼굴들이 일렁인다

기다리던 마음, 구겨진 신발처럼 펼쳐 신어도 오그라들었다

 

꿈속 복제된 병정들이 쫓기고 있다

벼랑 끝으로 계속 떨어지는 중이다

 

 

* 헬렌 배너먼, 꼬마 검둥이 삼보

 

 

   

자화상

 

 

 

프레임을 벗어난 안개처럼 메아리가 번식 중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풍경화 어디쯤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있다

 

숲을 이루고 싶은 여린 것들 그들이 도모하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 지면에 물감이 가장 옅게 지나간 자리 산과 들의 초입

웅덩이처럼 묘사된 오목한 자리 즈음

나는 풍경 속 모든 것들의 시점이 되고 관찰자가 된다

 

우기가 새벽이면 생겨났다 귀에 닿지 못한 말들의 거주지

외면당한 말들이 허공을 맴돈다

붓이 머물던 자리가 깊게 파였다

소리가 관여한 순간이 농밀하게 담겼을 것이다

읽히지 못한 소리가 서로의 등 뒤에서 맴돌고 있다

입속에서 자라며 번식하는 울음 돌아오지 못한 그리움이다

 

파랑새가 공중을 허락했다

붓끝으로 어루만진다 메아리를 다독인다

일렁이던 메아리 화면 위에서 굴절된다

울림이 지나간 자리 여백이 되었다

능선의 허리께쯤 음각된 표정이 있다 밑칠이 아프게 지나간다

소리를 머금은 붓이 나를 그리고 있다

 

    심사위원 : 최문자(시인), 장은석(문학평론가)

 

 

  조효복 / 순천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졸업. 2020년 봄호 계간 시로 여는 세상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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