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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 〈시인동네〉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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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32회 작성일 20-04-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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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 시인동네신인상 당선작

                                      
 

백경百景* 2 / 조윤재                                                                                                              .

                

   어차피 정물은 보편적인 상품이었을 뿐이야.

   ⸺아이작 애플(Isaac Apple)

                                                                                                                      

 

 

   사람 살지 않는 집에 인쇄기만 놓여 있다.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계속 폴 세잔을 소환하고 있다. 세잔1, 세잔2, 세잔3. 전부 사과 모습을 한 채. 경치 한번 좋구나, 연출된 정물도 원거리에서 보면 풍경이었다.

 

   죽은 화가의 잔해를 빌어 불꽃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지. 일렁이는 스펙트럼을 돋보기로 쏘아본다. 상징 안에 상징. 소화 되는 상징과 이미 가족을 구성한 상징. 날개가 모여 묶음이 될 때까지. 창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베레모를 쓰고 있다.

 

   심지에 불을 붙이니 사과는 더 선명하게 보인다. 대구에서 생산된 사과 당도가 떨어진 게 요즘 일이라지만 화가의 잔해를 빌어 만든 불꽃으로 바라본 사과는 전보다 건강해보였다.

 

   바닥에 흩뿌려진 사과 정물화들, “좋아, 이 정도면 사과나무를 구축할 수도 있겠군.” 그러나 이 성공적인 복제품은 머지않아 벌레를 먹고 마는데,

 

   “예상보다 빠른 카니발리즘이 진행될 것 같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 상품은 소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니까.” K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Y가 사과 정물화를 먹어치웠다. 찢긴 종이의 단면에서 사람의 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한니발의 식인 행위를 두고 예술적이라 평가한 사람이 떠오르는 타임이다.

 

   관람객의 시선으로 본 것이었지. 유수하게 복제된 풍경을, 똑같이 진행되는 풍경을, 필연을 비껴가지 못한 풍경을.

 

   문득 기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검은 숲에서 나오면 이질적인 검은 숲이 있는 것처럼. 벽을 밀어내고 바깥을 보면 부외자의 벽이 있는 것처럼. 간지러움이 느껴지는가. 누군가는 돋보기에 눈을 갖다 대는 중일 것이다. 누군가는 방대한 미니어처를 경외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복제의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백 개의 경승지.

 

 

 

포말과 새벽   

 

 

  

비눗물이 손에 닿았다

흘려보내야 할 꿈은 사소하지 않았기에

이 풍경은 조금씩 걸어온다

 

바람이 멈춘 사거리의 중심을 쏘다니며

이건 다음날이다

걸음걸이는 속도를 관통한다

고 외치다가

익숙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최후를 목격한다

 

손에 닿은 비눗물의 농도는

내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옅어지고

장면이 바뀐다

인파가 드문 사거리 중심에

낯설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이 납작 누워 있다

 

구분할 수 있다 믿었는데 도둑맞은 기분이다

착각이 동일인물을 빚었다면

어느덧 말라 있는 두 손

 

나 한때 위대한 걸 만들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표백에 중독된 자의 앞은 무엇도 살지 않고 뿌옇기만 하다

 

누구를 위한 만들기냐는 이명과

수돗물 소리에 밀려나는 장면이 교차하고

 

건조한 살갗을 노출하는 사람의 틈새

 

푸른빛이 통과하는 중이다

 

 

 

비밀의 주인  

  

  

   암호는 안개 같았다고 한다. 통하는 열쇠는 있는 법이지만 통하는 날짜는 없다. 주머니 속에는 문제를 파괴할 발화가 넘쳤다. 하지만 문제는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이 존재하는 동안까지만.

 

   그는 자신의 온갖 비밀과 수치를 말했지만 상대에게 쫓기는 미래에 그득하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장과 비밀은 모르는 사람의 것이 되려 한다.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자신을 노리는 암초는 풍부하였다. 도망치듯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순간까지. 유령 같은 속도로 쫓아오는 미미한 암호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 것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전 떠납니다.

 

   해가 중천이었다. 도주로를 살피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 너는 이름이 없으니. 이름 지어야할 여유조차 속도감에 짓밟히니. 인사를 하지 말라. 적어도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는 가족을 버리고 근원을 버리고.

 

   앞을 보면 커브 길이 있다. 위장의 입구 같기도 했다. 누군가를 먹어서 겁을 녹여야 했기에

   자기 자신을 먹어서라도 겁을 먹지 말아야 했다.

 

   고속버스의 종착지 같은 것도 잘 생각해보면 목적지가 아니었다.

 

   여기는 코즈믹

   평범한 내일들이 무시당할 정도로 많고

 

   문득 자신의 처지를

   12월 어느 월요일로 아는 곳.

 

 

조윤재 / 1998년 대구 출생.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중.  2020년 상반기시인동네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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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보다 슬퍼 보였다 2/ 송정원

 

 

 

   미칠 노릇이었다. 엄중해야 할 순간에 폭소가 쏟아지는 그의 고질병이 터진 것이다. 하필 장례식장에서. 친한 친구의 급작스러운 부친상에서. 부의금을 낼 때부터 불길했는데 방명록에 적힌 자기 이름 석 자가 왜 그렇게 웃겼을까. 위험한 콧바람이 흥흥 나오더니 수척한 친구의 얼굴 보는 순간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싫다 정말 진짜 너무 싫다 죽고 싶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고 등까지 들썩이며 웃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이건 저주 받은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친구가 눈치 챘을까. 얼굴 가리고 뛰어나간 이유가 웃음 때문이라고는 생각 못하겠지. 내 아버지의 죽음이 저렇게나 슬퍼할 일인가 놀랐겠지. 이러나저러나 다 이상했다. 그러나저러나 이 웃음은 대체 언제 멈출까. 웃음에게 머리채를 잡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동안 그는 완전히 탈진했다. 비틀거리며 겨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두 번의 절을 했다. 휴화산인 웃음이 다시 터져 재앙이 될까 봐 상주가 권했지만 아무 음식도 들지 않았다. 육개장, 배추김치, 멸치볶음 같은 아주 보통의 일상이 상 위에 오른 것을 보면 다시 웃게 될 것 같았다. 폭소 후유증으로 횡격막에 통증을 느낀 그는 허리를 둥글게 말아 앉았는데 내보내지 못한 울음이 등에 그대로 고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 사력을 다해 웃음을 봉쇄하느라 눈코입이 기묘하게 비틀어졌는데 그 얼굴은 어느 비명보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장례식장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 되었다.

 

 

 

페르난도

 

 

 

서대문구 창천동에 사는 페르난도에겐

지문이 있다네

 

이 나라에서 유일함을 가지는 것은 불법

 

범법자 페르난도는

지문을 눈동자에 새겨 넣었네

아무도 남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아무에게도 들킬 염려가 없었네

지구 밖에서 본 지구를 닮은 눈동자로

페르난도는 페르난도만의 세상을 본다네

 

손톱 밑이 까만 페르난도는

시를 쓴다네

 

이 나라에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불법

 

범법자 페르난도는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들에

애인의 발가락 다리미 하늘 숲 길고양이 흰쌀밥 이불에

시의 조각을 숨겨놓았네

애인의 발가락 다리미 하늘 숲 길고양이 흰쌀밥 이불은

그에게만 비밀의 노래를 들려준다네

 

굽은 등으로 걷는 페르난도는

눈물을 버리지 않았다네

 

이 나라에서 슬픔을 가지는 것은 불법

범법자 페르난도는

무거운 눈물을 등에 메고 다닌다네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눈물 같아서

걸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버릴 수 없었네

 

몰래 위험하고

몰래 아름다운

 

나의 미워하는 범법자 페르난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

 

 

 

너는 마시던 커피를 조금씩 남기는 습관이 있다

먼지가 가라앉아 있다고

 

한쪽 날개로 나는 새를 본 적 있니?

내 얼굴 하나가 방금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풍경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눈을 젖게 하는 것이다

 

너는 노래를 만들면서 부른다

첫 음만 떼면 그다음부터는 노래가 너를 데려간다고

 

해질녘 한강에서 불렀던 그 노래 있잖아

한번 불렀던 노래는 다시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어제는 계단 꼭대기에서 뒤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정수리 아래쪽이 욱신거려 머리를 고쳐 묶는다

 

영수증으로 작은 병풍을 접느라

너의 손은 바쁘다

 

영수증에 발암물질 있는 거 알아?

괜찮아 암 가족력도 없는데

내 이마와 비슷한 높이에서

오른쪽 날개를 열심히 움직이는 새를 본다

 

이거 봐 한쪽 날개로 날고 있잖아

나는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지 않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한쪽 날개로 나는 새는 없다고

 

 

송정원 / 1985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통계학과 졸업. 카피라이터. 2020년 상반기시인동네신인상 당선.


  심사위원 : 송재학, 이규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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