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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시산맥 신인 시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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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823회 작성일 21-02-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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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시산맥 신인 시문학상 수상작

 

 

 

손준호

 

발치 외 4

 

 

 

김이응

 

아가씨, 활짝 핀 꽃 외 4

 

 

 

 

심사위원 본심 | 곽효환 한용국

 

예심위원 | 조희진 지연

 

 

  

 

 

발치 4

 

손준호

 

 

뿌리가 비스듬히 깊네요

사랑니를 뽑고 당신 발치에 누워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반백을 동거하였으니

눅눅했던 시간의 흔적이 웅덩이처럼 파였어요

 

뿌리 뽑힌 곳엔 뿔이 나지요

땅이든 잇몸이든 퉁퉁 붓고 멍들 수 있어요

한술 뜨려면 두 시간은 솜 물고 있어야 해요

맘이 자꾸 쓰이고 혀가 저절로 가닿게 됩니다

 

난 자리는 그런 곳이죠

먼발치인가 싶어 돌아보면 없는,

지붕 위에 던져진 젖니는 누가 물고 갔을까요

콩닥콩닥, 가슴팍에 키우던 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슬픔은 어둠 속에서 뿌리째 번식합니다

발칫잠에서 등걸잠에서 새우잠으로

엄니로부터 엄니의 엄니로부터 유전하는 뿌리들

짐승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엄니라 부른대요

슬픔을 물고 늘어지려면 이빨 없인 안 되죠

 

햇살 갉아먹던 후박나무 이파리를 봤어요

어금니로 허공을 깨물던 세이지 꽃잎을 봤어요

그러나 한겨울이면 송두리째 몽니를 거두고

뿌리 발치에 스스로 거름이 되는 용기를 봐봐요

 

마스크 끼고 실밥 풀러 가야겠어요

겸손의 뿌리가 얼마나 얕은지 벌써 캔맥주가 생각나요

당신 발치 누워 줄거리 뻔한 일일연속극을 보면서

병든 나의 텍스트가 차츰 호전되었으면 좋겠어요

서울 하늘은 또 함박눈을 뿌린다는 일기예보예요

 

 

 

에이다

 

 

 

칼을 쥔 바람의 이름

 

무엇을 떠올리든 자유다 부신 금발의 북유럽 여인이나 열도 소녀의 애살맞은 이름 같은, 떠오른 생각에 돌을 매달아도 자유다 들고양이가 세 발로 오후 세 시를 유유히 건너가고 있었다 외진 마음 몇 자락 슥슥슥 베고 가는,

 

여리박빙의 나날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휩싸인 계절의 막후는 뼈저리게 앙상하였다 나무가 털리고 가계엔 금이 가고 간유리가 박살나서, 나는 강으로 달려가 살얼음이 되었다 등뼈에 성에꽃 새겨 넣던 그믐이었나, 어디선가 쩍 손목을 긋는 얼음장 조각조각 찢어진 손바닥 돌멩이처럼 굳어가는 혀

 

어른과 어린, 같은 말을 꺼내서

착한 피라미와 버들치의 아가미에 던져주면서

풍선껌처럼 질겅질겅 슬픔을 오래 되씹는 습관

 

딱딱해진 과거를 깨물면 이유 없이 혀끝에서 피가 났지

월동이란 한철, 어딘가 심장을 대신 보관할 곳 없을까

 

누군가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갈대 수풀에 버렸다

반지하 자취방 쪽창에 들이치던 소나기처럼

잊을 만하면 나를 두드리는 당신,

날아가는 칼을 쥔 바람의 이름

 

에이다,

 

 

 

 

햇살 요양사

 

  

 

뭉그적뭉그적, 해종일 저러고 있다. 빛바랜 플라스틱 의자에 푸져 앉아 혼잣말을 무슨 알약처럼 복용하고 있다. 먼길 오느라 솔찬히 욕봤소, 합죽한 노파는 함부로 반말을 던지지는 않았다. 기력 잃은 대문은 입을 헤벌쭉하고 민무늬 불록담은 군데군데 관절이 나갔다. 빨래집게는 틀니로 헐겁게 바람을 물었고 툇마루를 수발 중인 섬돌은 등허리가 반질반질했다. 해진 소매 끝단에 겨운 졸음 매달고 빈 들녘 볏단같이 모짝모짝 말라가는 노구.

 

어디 좀 봐요, 햇반은 잘 데워 드시나요? 볕살 몇 장 꺼내 정수릴 쓰담쓰담하자 터앝머리 모과나무가 참새 떼 한 됫박 쏟아붓고 왁자해진 독거에 마당은 혈색이 확 도는데, 외려 먹구름처럼 그늘지는 안색. 문득 눈물길로 차올랐을 것이다. 손금을 툭 놓친 사람, 시큰시큰 쇳내 나는 이름. 종신보험같이 오래된 그림자만 몇 차례 뙤똥뙤똥 문지방을 들락거렸다. 늙은 나무라고 늙은 꽃을 피우는 건 아니잖아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해요. 저녁이면 손끝에 경련이 일어요. 쇠줄 묶인 백구가 등 휘도록 텅텅 적막을 물어뜯고 있었다.

 

 

 

 

 

벚꽃뱅어

 

  

 

황사는 웃었고 마스크는 울었다 꽃가루가 입술을 틀어막자 쿨럭, ()은 비염을 앓았다 구름의 등뼈가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직진해야 하는데 좌회전 차선에 들었다 칼날 뒤집으면 칼등에도 꽃은 핀다고 밀어서도 당겨서도 문은 열릴 수 있다고, 라디오 주파수에 쑥물빛 짱짱 꽂혔다 때아닌 우박이 네이버 속보에 쏟아졌고 둥글둥글 파문에 우산처럼 접혔다 펴지는 마음, 무르팍 당겨 앉은 바람이 슬쩍 악수를 청하면 수당 받으러 온 실직자처럼 쭈뼛 보리이삭 패는 사월,

 

가시나가 공부해서 뭐하노, 그 덕에 미싱을 빨리 돌렸고 내력만큼 답답한 산소마스크 낀 누이는 마침내 식물이 되었다 녹색 심장을 가진 봄은 빚쟁이처럼 몇 번 더 찾아왔고 까무룩, 노모는 웃음이 무거워 자주 발등을 찧었다 절정의 계절에 강으로 돌아와 알 낳고 죽는 벚꽃뱅어처럼 세상이 다 웃는 봄 같아도 누구나 울음 한 바가지 늑골 깊이 쟁여두고 사는 것을, 목단 이불에 찬밥 쑤셔 넣던 기억의 아랫목에 보내지도 잡지도 못할, 누이여!

 

 

 

 

 

 

피싱*

 

 

 

1

낚싯줄 묶인 독수리 모형이 포도밭에 떠 있다. 바람이 얼레를 풀자 낚싯대 끝이 팽팽하게 휜다. 솟구치는 독수리. 펄럭이는 독수리. 파르르 공중의 낱장이 찢긴다.

 

낚고 있습니까, 날고 있습니까?

바람이 빠지자 몸을 접는 풍선 인형처럼 연출이 끝난다.

 

 

2

수화기 속 검은 목소리 사람을 낚는다.

우체국입니다 검찰청입니다 말씨가 좀 어눌합니까 믿으세요 믿으라니까 당신의 자식이 납치되었습니다

 

미끼를 최첨단으로 갈아 끼우고 카톡을, 메시지를, 대화를 가로채겠습니다. 엄마가, 언니가, 애인이, 절친이 되겠습니다.

 

돈 을 부 치 세 요 제 발 돈 을 부 치 세 요

 

그놈 목소리가 독수리 타법을 쓰고 있다.

 

 

3

독수리 허수아비가 못 미더운지

농부가 그물망을 치려고 밭두렁에 말뚝을 박고 있다.

 

  

*피싱(phishing) : 전자 금융 사기

 

 



수상소감

 

 

그런 마음으로 출발해요, 시가 오고 있어요

 

 

나의 동선이 형편없어졌어요. 어제는 현관문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는걸요. 여기와 저기, 경계를 지워버린 눈이 녹고 있어요. 녹아내리는 슬픔은 누구에게나 아픔. 시골버스가 길가에 멈춰 노파를 태워요. 승강장이 아니어도 버스가 설 것이란 짐작. 그런 마음으로 출발해요. 어느 모퉁이를 돌아 시가 오고 있다는 생각. 결국에는 내게 당도할 것이란 믿음. 그렇게,

별안간 당선 전화가 날아들었어요. 멈춰버린 듯 아닌 듯. 일순의 떨림. 콩켸팥켸 가슴팍에 붐비는 기억들. 벽지를 더듬고 간 웃풍이었나, 떠난 아버지의 마른기침이었나. 가난한 유년의 풍경이여. 설움 훔치던 어머니의 차가운 아궁이여. 함부로 내질렀던 청춘의 시퍼런 주먹이여. 생의 살점을 물어뜯던 병마여. 고마웠어요. 남천 생울타리 눈시울이 붉어요. 덜렁수캐같이 밖을 서성거렸던 나의 부재여. 남편이여, 아빠여, 둘러보면 없던 이름이여, 시간이여. 미안해요. 내 사람의 둘레가 조금 환해졌으면 해요.

장하빈 시인님. 별사탕 한 개로 詩作한 일이 이렇게 커졌어요. 오래 걸려 멀리 에둘러 왔네요. 불필요한 게 때론 필요했나 봐요. 덕분에 모서리가 많이 닳았어요. 다락헌(多樂軒) 마당귀 꽃무릇은 땅속에서 한겨울을 애태우고 있었겠지요.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걷도록 등을 미는 바람처럼, 나에게 시의 배후가 있다면 당신입니다. 현대시의 낯선 언어를 접하게 해주신 변희수 시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수요일마다 함께 시를 매만지며 꿈을 키웠던 다락헌시인학교 문우님들. 여기까지 절반의 걸음은 그대들 몫이에요. 부족한 시를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시산맥에게 지금부터가 시작, 이란 다짐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할게요. 언제나 시의 발치에 있겠습니다. 오늘은 자작나무 서늘한 눈매를 보러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럼.

 

 

 

손준호

197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2020년 노계문학백일장 우수상(시조)을 받았다.

이메일 link1157@nate.com

 



아가씨, 활짝 핀 꽃 4



김이응

 

 

엄마는 빨간약을 아까징끼라고 말했다

 

초경을 하지 않은 계집애들과 몽정 없는 사내애들이

숨바꼭질하던 무싯날,

 

하날 때, 두알 때, 사마중 날 때,

껌 씹는 언니들이 육낭거지 팔 때,

술래의 딸꾹질이 때맞춰 날 때,

 

고드래뽕이라며 한 마장쯤 내달리다

도깨비고비에서 넉장거리로 무너지던 저물녘

아카시아 단내가 이마를 스쳐올 때,

 

물음표를 떼어내며 첫사랑에 눈뜨던 초여름은

웅덩이마다 도롱뇽이 슬어놓은 알알이 몽글몽글해

무덤 많은 논틀밭틀로 질러가던 내 발소리에 놀라

오줌 지리고 돌아온 밤

 

담 없는 그 집에선 숨길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아

잉큼잉큼 뛰는 아랫배도 숨길 수 없어

너른 변두리로 쏘다닐 즈음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아까징끼로 가슴팍을 문대던 엄마

 

아가씨야 가시에 찔렸다며 말 더듬던 내 동생

딸꾹질이 뚝 멈췄을 때,

 

질겅질겅 씹던 껌을 삼켜버린 무싯날은

내 몸에서도 아가씨 꽃 지린내 나던 날이었다

 

 

 

 

랑게르한스섬의 일요일 오후

 


 

인상파 말기입니다

 

이자라고도 불리는

X번째 투시 그림입니다

 

마이크로네시아의 산호초 같기도 하고

썩은 과일의 씨앗 같기도 한

폴립들이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여기

이 섬이 랑게르한스죠

 

달력에서 달아난 어느 일요일 오후

 

그림자에

쫓기던 화가는

내분비선에 실린

옛 애인의 검은 양산에 놀라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팔라지고

흥건해진 손바닥으로 피하지방층을 가리려 했다지만

 

자율신경계의 교란이란

단맛에 길들여진 원숭이의 눈썰미엔

어쨌거나 달달한 포도당의 장난인데

 

창녀의 웨딩드레스처럼 부푼

유령해파리

촉수처럼 뾰족한

바늘로

찔러댄

셀 수 없는 우점종들

 

보호색으로 가릴수록

빛에 빛을 더할수록

도드라지는 그늘에서

 

화가의 엉덩이가

바나나처럼 짓무르고 있습니다

 

피사체의 해부학 시간,

 

마취된 카메라

동공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십이지장에서 비장까지

리아스해안선이 뒤집히고 있습니다

 

복제하셨습니까?

그럼, 캔버스에 사인해주시지요

 

 

  

 

 

사라진 옥상 언니들은 몇 옥타브까지 올라갔을까

 

 

언니들은 섬, 구름, , 구름을 부르며 구름을 더 좋아했다

나는 발, 구름, , 구름을 굴리는 언니들이 더 좋아졌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날에도 언니들이 웃는다

바다 끝까지 간 사내는 돌아올 힘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믿으며

, 구름, , 구름처럼 들뜬 그녀들은 구름을 더 좋아했다

 

구름다리를 건너다닌 옛날을 떠올리며 빨래를 밟으며

나도 옛날에 어린애였단 건 믿을 수 없지만 믿음직한 언니들은 껌을 씹는다

어느 호주머니에서 한숨이 빠져나올지 모르는 아주머니처럼

풍선껌을 부풀리다 손톱으로 터뜨린다

 

해바라기보다 키 큰 바지랑대 사이로 몰려다니는 먼지들

그 사이로 마르는 빨래들, 언니들은 마르지 않고

네 시가 되면 어째서 이 빠진 접시 같은 기분에 젖는지

접시꽃과 헷갈리는 꽃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수록

그녀들은 구름을 더 좋아했다

 

빨래가 젖는다 비옷이 없는데도 언니들은 더 이상 젖지를 않고

비 맞은 비웃음은 쓰지만 쓴웃음은 소리가 없는데

실소로 번지면 황혼이 올까? 황혼은 종기보다 더 잘 터질까?

그녀들이 웃는다 요실금 터진 할머니처럼 찔끔찔끔 웃는다

 

어느 그림자가 먼저 추락할지 모르는 초저녁

헤프게 웃던 언니들은 나팔꽃처럼 축 처진 외줄을 타고,

구름, , 구름, , 노래하다 사라진 그녀들은 언제나 빵이 더 필요했다

 

 

 

 

 

추파춥스

 

 

입술이 달려간다,

 

사랑을 받으러

혀를 밀고 들어간다,

 

맛의 자기장으로

추파!

 

불알을 꼭 쥐고

두드리는

, , , , , , , ,

 

한 옥타브

실로폰의 행성들

 

살살 녹는 이것은 사탕이 아닌 사랑

색깔로 흥행을 점치는 이것은 사탄이 아닌 사랑

 

발상의 궤도부터 다른

삐딱한 달리*처럼

입자가속기에 태양계를 넣고

돌린다

 

혓바닥의 미뢰로 떨어진

별똥별은

, , 터져

운석들의 달달한 스캔들은

은하수로

쫙쫙~

퍼져

 

두 볼이 부푼다,

 

젖꼭지를 빠는 힘으로

알을 삼킨

아이들의 꿈이 팽창한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여름 들판의 사탕수수처럼

사르르 녹는 사카린의 핵융합으로

붉은 데이지의 꽃술과 고양이 성운의 푸른 눈에

침을 바른 거짓말로 완벽하게 포장되는

 

삼킬 수 없는 추문!

살릴 수 없는 추락!

 

명왕성의 심장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이빨 빠진 아이들이 문상 온 날,

 

이것은 끈끈한 설탕의 죽음

이것은 뼈대만 남은 태양의 주검

 

실눈 뜬 아이들 머리 위로

개미 떼가 몰려든다

 

  

 *막대사탕 추파춥스의 포장지 로고를 데이지 꽃으로 디자인한 살바도르 달리

 


 


  

물집의 성분

 

 

기분 따라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꽃밭,

그곳은 무섭게 고요했다

 

고요는 물끄러미의 동사,

곧 축축해지는 건조체였다

 

엄마는 활짝 핀 꽃을 옮겨

현실을 허구로 바꾸려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날마다 내 귀에 꽂은 것은

바람,

 

곧 시들해지는 아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화였다

 

그래도 그곳은 꽃의 무덤,

눈물을 부어주면

신기루처럼 젖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는

부끄럼이 많고

부끄러움은 구멍 난 빤스 같았다

 

아침마다 방문을 열어보는 엄마도

가랑이 사이에 낀 빤스 같아

구멍 많은 오아시스에

엄마를 꽂았다

 

, 그렇게 살면 세상이 좁아져,

꽃들이 농담을 했다

 

피부가 차갑고 투명한 농담,

썰렁한 사후경직이 일어났다

 

진짜 같은 조화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엄마는 죽어서도 엄마 같았다

 

다래끼를 터뜨렸을 뿐인데

구멍마다 엄마가 새어 나왔다

 

몽정처럼 부드럽게

 

 

 

수상소감

 

 

오래된 핸드폰은 자주 꺼진다. 핸드폰에 배터리를 연결해놓아도 금세 충전이 되지 않는다. 다급한 전화가 올 일 없는지라, 뭔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핸드폰이 꺼져 있어도 무심할 때가 많다. 그날도 그랬다. 낯선 번호가 떠 있은 걸 발견했을 때는 핸드폰보다 더 오래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충전을 해두었기에 그나마 부재중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 수 있었다. 통화음 다음으로 낯선 남성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 여성분이시네요. 저는 이름 때문에 남자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 . 제 본명이 좀 그렇죠. 하지만 제 시는.......” “아뇨. 시도 중성적인 면모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원고를 보내면서 즉흥적으로 만든 필명이 떠올렸다. ‘김이응’ 34대 종손 집 맏딸로 태어났으니 아버지의 성은 버릴 수 없었고, 시인으로 거듭나는데 심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어머니의 성은 꼭 넣고 싶었다. 하지만 두 개의 성 다음엔 뭘 넣지? 잠시 고민했지만, 마음을 따라가니 답은 쉽게 구해졌다. 그리고 <시산맥>신인문학상에 응모하면서 처음으로 이 이름을 썼다. 그것이 앞으로 내가 시를 발표할 때마다 나를 지칭하는 이름이 될 줄은 전혀 예상은 못한 채 말이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꽤 길게 늘어놓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실 문학 공부를 시작할 즈음부터 내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이름으로 불려본 적 없는 괴물이 되면 사람들의 세상이 낯설게 보일 듯싶었다. 하지만 괴물-되기는 슬프고 외롭고 심지어 억울했다. 입이 있지만 정작 입을 열어야 할 때는 말문이 막혔다. 이제 와서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에둘러 처음 문학에 입문하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곳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연애 시편들과 함께 하는 봄날이었지만, 내 시를 읽어주던 사람이 사라지자 봄날마저 떠났다. 그래도 여름날은 용케도 찾아와 비교적 젊은 내게 아동문학이란 밝은 옷을 건네주었지만, 나로서는 제아무리 잘 골라 입어도 어쩐지 빌려 입은 남의 옷만 같았다. 결국 나는 훌훌 벌거벗고 조용히 숲으로 들어갔다. 편안한 한편 두려웠던 가을 숲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도 알아챌 수 없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시는 나다워졌을까? 쓰면 쓸수록 답을 알 수 없었다.

오래된 핸드폰을 바꾸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바꿀 생각이 없다. 이상한 고집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실은 시라고 끄적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유일한 벗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돌고 돌아 어렵게 되돌아온 원점인 시() 마을에서 언젠가 찾아올 겨울을 맞이할 생각이다. 홀로 걷고 있던 내게 이름을 묻고 도반이 되어준 <시산맥>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뒤처져 걷고 있던 내게 관심을 가져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당선 소식에 그 누구보다 기뻐해 준 엄마가 잘 걷지 못하신다. 한 가지 놀라운 건 내가 시 쓰는 걸 그 누구보다 반대했던 아버지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내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그 두 분께 김이응을 소개한다. ‘응이라고?’ 되묻는 막냇동생 내외의 목소리는 환청일까? 바라건데, ‘고모가 김이응이야?’ 라고 확인할 조카들에게 내 시 역시 수수께끼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이응(본명 김영욱) 약력

 

 

19671220일 생,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문학으로 박사 수료.

 이십 대 중후반엔 SK해운을 다니고 삼십 대엔 몇몇 출판사를 다녔다.

사십 대 초반에 그림책에 눈을 뜨고, 에세이<그림책, 음악을 만나다>(교보문고 2007), <그림책, 영화를 만나다>(교보문고 2010)를 펴냈다그 후로 동화작가와 아동청소년문학 번역가로 활동했다.

중봉조헌문학상 시 당선(2019),

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 문학부 대상(2019),

여수해양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2019),

월명문학상 당선(2019),

포항소재문학작품공모, 시 부문 우수상(2019),

경북일보문학대전, 소설 부문 우수상(2019),

문경새재문학상 대상(2020),

한국해양재단 해양문학상 금상(2020)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메일 sylplus@naver.com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7편의 작품은 각각 다양한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는 게 특색이었다. 혹시 언어의 향연에만 치우쳐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는 달리 삶의 현장성과 언어의 축제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를 모색해 가는 작품들을 심사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중 4편의 작품이 논의 대상이 되었다.

조이경의 손말9편의 작품들은 시어를 다루는 데 있어 능숙하고, 시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확장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시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시적 의미가 불투명해지고 반대로 시적 의미에 집중하는 작품에서는 시적 상상력이 약해져서 시적 긴장을 놓치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한경훈의 나쁜 달의 나라에서10편의 작품들은 과학적 언어와 지식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면을 보였다. 그러나 시에 사용된 언어와 지식들이 시적 의미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어 시적 발효가 부족한 측면이 있었고, 때로는 시적 진술이 거칠게 나열되거나 산만한 경향으로 흐르는 점이 아쉬웠다.

김이응의 그들만의 리그9편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언어가 발랄하고 시적 상상력이 활달한 측면을 보였다. 특히 아가씨 활짝 핀 꽃은 소녀가 성숙한 여인이 되는 과정을 활달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그 밖에 엄마의 눈물주머니를 고찰한 물집의 성분, 추파춥스 사탕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삐딱한 달리-운석-은하계로 상상력을 확장해가는 추파춥스, 발랄한 언어를 통해 여인들의 꿈과 기다림과 삶의 현실을 유려하게 담은 사라진 옥상의 언니들은 몇 옥타브까지 올라갔을까등은 상당한 시적 수련을 보여주고 있었다.

손준호의 발치9편은 전체적으로 응모작의 수준이 높고 고를 뿐만 아니라 시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또한 시어 운용에 있어 자연스럽고 안전감을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발치의 당신의 발치’, 치아의 발치’, ‘먼발치’, ‘뿌리 발치라든가, 에이다칼을 쥔 바람의 이름, 외국 여인의 이름, 날카로운 것의 이름등 동음이의어를 통한 능숙한 시어의 부림 그리고 시적 상상력의 확장을 통한 감정전이 능력 등이 우수했다. 그 외 햇살 요양사는 독거노인의 삶을 돌보는 요양사로서의 햇살을 따뜻한 서정으로 탁월하게 옮긴 수작이며, 그 외의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날카로우면서도 능숙하게 풍자하는 솜씨들이 돋보였다.

선자들은 최종적으로 손준호의 작품들과 김이응의 작품들을 논의하였다. 활발한 토론 끝에, 각자가 가진 완성도와 가능성을 모두 인정하여, 두 분 모두를 신인으로 당선시키는 데 합의했다. 시가 놓인 자리는 언제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위다. 두 분 모두 한국시의 새로운 미답지를 씩씩하게 걸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축하의 말을 보탠다.

 

 

본심 : 곽효환(시인) 한용국(시인)

예심 : 조희진 지연(시산맥 등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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