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 김혜린) > 공모전 당선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공모전 당선작

  • HOME
  • 문학가 산책
  • 공모전 당선작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주요 언론이나 중견문예지의 문학공모전 수상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 김혜린)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98회 작성일 23-01-10 13:25

본문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김혜린

물레 위에서 점토를 돌린다

선생님은 마음의 형태대로 도자기가 성형된다고 말했다

점토가 돌아가는 물레가 있고

물레는 원을 그린다

물레가 빚어내는 바람이 원의 형태로 부드럽게 손을 휘감는다

생각하는 동안 점토는 쉽게 뭉그러지고

도자기는 곡선이지만 원은 아닌 형태로 성형된다

가끔 한쪽으로 기울고 일그러진다

그러는 동안 창밖의 개들은 풀밭 위를 빙글빙글 돈다

꼬리를 쫓으며 도는 개의 주변으로 풍경이 둥글게 말린다

부드럽고 단단한 개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려 하는 수백 개의 동그라미들

개들을 보면 사람은 마음속으로 무엇을 그리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잘 재단된 옷을 입고

같은 사이즈의 길을 걷는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언젠가 집으로 연결되는 길에서

길을 잃는 방법을 잃어버린 동네에서

구획이 잘 나누어진 길을 직선으로 가로지른다

어느새 공원은 개들이 풀어놓은 동심원으로 가득 찬다

나는 원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꼬리에 시선을 두고 여백에 시선을 두고 선에 시선을 두고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면 더 많이 돌 수 있다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 내 손끝과 반대쪽 손끝 사이의 거리를 잰다

선은 아름답게 구부러져 있다

원이 아닌, 모든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직 백자가 어떤 모형으로 구워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정성 들여 유약을 칠한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길에서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희고 맑다

어느새 풍경은 백자가 되어 있다

 

 

시 당선소감:보고자 마음먹으면 티끌에도 우주가 보여

오늘은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면 집 앞을 쓸어야 하지만, 저는 여전히 눈은 좋은 소식이라 생각해요. 투고하던 날에는 할머니가 꿈에 나왔습니다. 그런 것들이 좋은 징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징조들에 배신당한 적이 너무 많아, 그냥 내리는 눈을 구경하며 일이나 하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선이 된다면 멋진 말들을 늘어놓고 싶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저와 거리가 먼 것 같아 그냥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번이 신춘문예에 투고한 지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태연해지면 좋을 텐데, 저는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가 갈수록 조바심을 내고 전전긍긍하며 보냈습니다. 간절히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바라며 풀숲을 들여다보고, 밤이 될 때까지 공원의 오리들을 지켜보고, 낯선 도시의 낯선 역에 내려서 헤매도 보고.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너무 간절한 꿈이었는데, 꼭 내가 되고 싶었지만, 또 꼭 나일 이유는 없어서. 그저 쓰고 또 썼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도 꿈이라 생각하며, 꿈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사이에 또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시를 쓰고, 시를 아는 척도 해보고. 이해하는 척도 해보고.

그러니까 시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보고자 마음먹으면 작은 티끌 하나에서도 우주가 보이고, 보고자 마음먹지 않으면 드넓은 우주에서 작은 티끌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제게 시는 한 번도 쉽게 다가온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였습니다. 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게 다가오는 무언가, 제가 보는 무언가가 시라고 믿으며 계속 쓰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쓰면 그게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앞으로 어떤 시들을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백자를 굽는 마음으로 정성 들여 쓰겠습니다. 제게 다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나희덕 선생님, 박형준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조만간 눈처럼 좋은 소식과 함께 연락하겠습니다. 다만, 소식을 전할 수 없는. 할머니, 아버지. 당신들이 내게 준 이름이 여기에 있어요.


김혜린

1995년 서울 출생숭실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시 심사평 :‘마음의 형태를 부드러운 조형미에 빼어나게 견줘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세밀하게 읽었다작년에 비해 응모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응모작들의 수준은 높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 많아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응모작들은 개인적 서사를 시로 풀어낸 작품들의 비중이 컸는데이 작품들을 통해 삶의 질곡과 통증소통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시적 모티프로 폐점과 채무구직과 고된 노동 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곤고한 일상을 체감할 수도 있었다심사위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들은 행방’ ‘비광’ ‘인공눈물’ ‘어린이는 자란다’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이었다.

 

​ 행방은 외할머니의 부음을 들은 시적 화자의 내면을 담담하게 노래한 작품이었다. ‘’ 냄새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미지화하는 능력이 뛰어났고마음의 누선을 건드려 뭉클했다도입부가 다소 평이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 비광은 삼촌이 겪은 비탄의 내용을 기록한 작품이었다가게 구조와 오 도씩 기울어진 화장실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묘사가 돋보였다그리고 그것을 삼촌에게 곧 닥칠 절망에 대한 어두운 암시로 유효하게 연결시켰다개인적 체험을 보다 보편적으로 확장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 인공눈물은 함께 보내온 다른 시편들에 비해 새로웠다사물을 결합해서 정서를 만들어내는 신선한 솜씨가 있었다이 작품은 영화를 보며 울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화자의 행위를 통해 오히려 우리의 가슴에 있는 공통의애련(哀憐)의 감정을 발견해내는 작품이었다그러나 돌려놓을 수 있는 모양은 없어요와 같은 표현에서처럼 모호한 진술이 더러 있었다.

​ 어린이는 자란다는 성장기를 다뤘는데 자아와 가족과의 관계를 진솔하게 표현해 감동적이었다시행의 경쾌한 보법도 인상적이었다서사가 길어지면서 긴장감을 상쇄하는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고심 끝에 심사위원들은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에 동의했다우선 이 작품을 포함해 응모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고 안정적이었다산문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생신(生新)한 이미지와 사유의 쌓임이 특별하게 만들어낸 시구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어서 시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견인해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특히 당선작은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마음속에 있는 깨끗한 서정을 빚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단순하게 도자기를 빚어내는 경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구획된 직선과는 대별되는 곡선과 둥긂을 지향하는 마음의 형태를 백자의 부드럽게 굽은 조형미에 빼어나게 견주었다이러한 안목과 감각이라면 앞으로 시단에서 자신만의 육성을 산뜻하고 묵직하게 표출할 신예라는 데에 깊은 신뢰와 기대를 갖게 했다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84건 2 페이지
공모전 당선작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3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3 1 01-11
23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5 1 01-11
23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5 1 01-11
23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40 1 01-10
23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1 1 01-10
22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5 1 01-10
22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8 1 01-10
22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6 1 01-10
열람중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9 1 01-10
22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38 1 01-10
22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3 1 01-10
22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7 1 01-10
22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5 1 01-10
22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6 1 10-19
22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1 1 08-29
21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8 1 08-25
21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4 2 06-15
21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3 1 06-07
21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5 1 01-07
21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1 1 01-07
21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 1 01-07
21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0 1 01-07
21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6 1 01-07
21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9 1 01-07
21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3 0 01-07
20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4 1 01-07
20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3 1 01-07
20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9 1 01-07
20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4 1 01-07
20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6 1 01-07
20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6 1 01-07
20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68 1 01-07
20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3 1 01-07
20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2 1 01-07
20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8 1 01-07
19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5 1 01-07
19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36 1 12-05
19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6 0 11-22
19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9 0 11-22
19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8 0 11-22
19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4 0 11-22
19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5 0 11-16
19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7 0 11-16
19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9 0 11-14
19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25 0 11-14
18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5 0 11-14
18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2 0 11-14
18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4 0 11-14
18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8 0 11-14
18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0 0 11-14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