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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당선작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외 / 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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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36회 작성일 23-01-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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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현대문학신인추천 당선작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외 / 유선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유선혜

 


  내 여자친구는 비만입니다. 온 세상이 고통이라서 허기에게 늘 집니다. 우리는 방이 두 개고 화장실이 하나인 집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목이 죄다 늘어난 티셔츠를 접다가 포근한 보리수보다 헤픈 바다를 사랑해서 단맛보다 짠맛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미소 짓는 얼굴은 염주보다 동그란데 모든 일이 헛되고 무상해서 새로 돋아날 수가 없고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박자보다는 삶의 입자를 쪼개느라 의미 없는 댄스가 싫다고 합니다. 우리는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홉 번 태어난다는 포동한 고양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전생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로는 태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자 인자하게 웃으며 더 나은 위로는 없냐고 합니다. 한밤중에 불이 켜진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어떻게 겨우 네 글자로 영원불멸을 적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물이 끓으면 그녀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가스 밸브를 잠급니다. 그러고는 라면의 면발이 지방으로 가는 인과의 고리라고 속삭입니다. 그녀는 살에 있어서는 관념론자입니다. 슬픔이 잦은 나를 위해 매일 밤 침대에 눕고 서러운 명상에 젖어 나를 안아줍니다. 그녀의 외로운 팔뚝은 혼자인데 자유자재입니다. 내 여자친구는 온 세상이 걸려 있는 그물의 시작입니다. 방이 어두워집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뾰족하지 못한 글씨체로 자기소개서 위에 씁니다. 취미는 살아 있기, 특기는 고요하기라고요.

 

하얀 방

 

 

  해변에서 옮아온 모래가 이불 위로 흩어진다. 모래는 이불 주름 사이로 모여서 일정한 흐름을 만든다. 지나치게 짧은 손금 같다.

 

  우리는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축하해야 할 일이었다.

  밖이 잘 보이는 깨끗한 객실을 빌렸다. 하얗다는 인상이었다. 방의 커다란 직사각형의 유리창이 바다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모든 시작을 기념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는 해가 지기를 잠잠히 기다리다 폭죽을 들고 바닷가로 갔다. 불을 붙이고 폭죽을 쏘자 불의 알갱이들이 하늘로 올라갔고 모래 위에 우리의 그림자가 성처럼 쌓였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빛이 시야로부터 질문을 흐리게 지워주고 있었다.

  폭죽 하나가 불량이었다.

  갑자기 우리를 향해 터질까봐 들여다볼 수 없었다. 우리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흰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에는 모래를 제대로 털지 않고 잠들었고 심장 주름과 혈관 사이로 모래가 흘러 들어와 두근거릴 때마다 거슬리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긴장한 손은 땀이 차서 엉망진창이었고 나는 입학식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 불량품처럼 뻣뻣이 서서 알지도 못하는 교가를 웅얼거리는 와중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객실을 떠날 때가 돼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이 방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흑백 방의 메리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 올 때 빨간 화분 하나를 샀다. 그 식물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었고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메리 메리 부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고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에 메리가 있었다. 빛이 메리를 두드리고 메리는 빛을 모두 먹어 치웠다. 물을 주면 잎은 점점 늘어났다.

 

  메리는 평생 좁은 방에 갇혀 흑백의 세상을 보지만 이 세상의 모든 물리적 사실을 아는 천재 과학자입니다. *

너는 언젠가 이런 내용의 논문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너는 자주 일상의 방법을 잊어버리곤 했다. 잘 자라고 문을 닫으며 인사하고, 올바르게 연필을 손에 쥐고, 변기를 사용한 뒤에는 커버를 내리고, 양파를 먹기 좋게 자르고, 양말을 뒤집어놓고, 화분에 물을 주는 그런 방법을.

 

  우리가 이 집에 익숙해질 때쯤

  너는 나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커다래진 메리의 잎사귀를 유심히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메리가 우리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메리는 우리의 무채색 목소리를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기억을 먹고 메리는 거대해졌다. 균열하는 분위기와 침묵 속에서 천재가 되었다.

  물을 주는 일을 멈추고 싶었다.

  지금 너는 방으로 돌아오는 그 좁은 골목을 기억하지 못하고

  방에는 여전히 빛이 조금 들어오고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메리는 그 빛 덕분에 오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빛이 얼굴을 관통한다. 메리는 벌써 창문의 절반 정도를 가리고 있어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불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Frank Jackson, What Mary Didnt Know.

 

 

 

아빠가 빠진 자리

 

  흔들리는 이는 밤사이 빠졌고 아침이 되면 그 이를 뱉어냈다. 세번 나는 이는 없다는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젖니를 모아두던 상자가 있었다. 밤마다 상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새 이가 영원하라고 빌었다. 어린것들은 하얄수록 쉽게 변하는 법이다.

 

  이가 모두 자라자 더는 아빠와 함께 잘 수 없었다.

 

  사전에 의하면 충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내 입으로 처음 세균을 옮긴 사람을 찾아낸 뒤, 온통 책임지라고 하고 싶었다.

이를 닦으면 거품이 흘러 나왔고 입을 헹구면 끝도 없이 구역질이 났다.

  치과에 가는 날들이 늘었다. 아빠는 돈을 냈으며, 썩어버린 이를 고쳐주었고,

  나는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빠를

  상자 안의 젖니처럼

  그렇게 두 번째 아빠가 생기고 세 번째 아빠가 생기고 네 번째 아빠 계속 계속 아빠가 늘어나고

  처음의 아빠는 다정하고 그다음 아빠는 엄격하고 그다음 다음 아빠는 유머러스하고

  아빠들은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나를 이룩해주고

  아빠를 줄지어 늘어놓고 아빠의 개수를 세어보면서 어떤 아빠가 제일 하얀가 따져보며 괜한 투정도 부려볼 때, 상자 속에 아빠가 가득 차 아빠가 넘쳐서 더 이상 상자의 뚜껑을 닫을 수 없을 때,

 

  그러면 내 키도 영영 멈춰버릴 것 같았다.

  아빠를 수집하고 싶었다.

  아빠를 모으면

  그러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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