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귀 방 외 / 차현준) > 공모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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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귀 방 외 / 차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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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98회 작성일 23-01-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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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 차현준



당귀 방 외 4편 / 차현준



셔츠를 입었을 땐 이렇게 하면 된다. 통풍이 잘되는 곳을 찾아 간다. 가슴팍에 있는 단추 두 개를 고른다. 윗단추와 아랫단추 사이에, 그러니까 명치보다 더 안쪽으로. 복도까지 닿게 손을 집어넣는다. 이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확보해 놓은 부지에 찾아가는 방법이다.

​그새 빽빽해진 것 좀 봐

​단숨에 끼쳐오는 향내

​남미 향을 담았다던 디퓨저를 책상에 놔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밭에 자주 찾아오는 편인데도 나는 늘 모르겠다. 입이 벌어지고 만다. 당장 흰쌀밥 흑미밥에 넣을 만한 잡곡들····· 잎에다 올려놔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찰기가 입속에서 몇 바퀴씩 감싼다고 생각해봐. 적당히 찰진 밥을 한 품에 안아줄 당귀들이 여기 이렇게나 많고

​작은 당귀 밭

밭을 품고 있는 당귀 방

벽과 천장과 창문과 손잡이

제각기로 쳐다보는 당귀들

저들끼리 깍지 낀 당귀들은 선택받지 못했다지, 뽑아내니까 바스러지는 거 봐, 어떡해, 말하면서 당귀를 거두는 손짓은 거침없다. 이 당귀들을 모두 뜯어 먹는 생각만 하면 참기를 고춧가루 버무리는 손처럼 즐겁다. 기분 좋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당귀 향이 가득 들어왔다. 신나서 줄기들을 샅샅이 뒤지다가 어느 손가락이 건드린 당귀가 그렇게 싱싱하다는데····· 싱싱한데 싱싱? 잠깐만 싱싱은 아닌 거 같은데 싱싱····· 차라리 밍밍?

그 주변 좀 젖혀봐

줄기가 잘 안 잡혀

​나는 밭에 멈춰 섰다. 그 부근을 제대로 들추자 당귀 줄기를 타고 올라 꼬물꼬물····· 언젠가 하천에 가면 주근깨가 간지럽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기분에서 빠져나온다.

당귀 밭에서 빠져나와

당귀 방에서 빠져나와

복도에 늘어선

적근대 방

치커리 방

상추 방

케일 방

겨자 방

호박잎 방·····

내가 자처한 방들·····

​오늘 점심은 쌈밥을 먹으려고 했다. 두부를 으깬 강된장도 올려 먹으려 했는데····· 나는 도통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얼마 전 집 안 냉장고 구석에서 녹고 얼고 녹다 잿빛으로····· 물컹해진 치커리의 퀴퀴한 냄새. 치커리를 처분했던 일이 떠오른다. 냉장고는 당황하지 않았다. 냉장고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지금도 밭 구석에서 뭉쳐지고 물컹해질 당귀들·····

​이거 봐, 복도에 또 멈춰 섰잖아

​셔츠 밖에서부터 들어온 흰 김이 복도를 감싸고 나서야 복도에 멈춰 섰다는 걸 깨달았다. 당귀 방으로 흰 김이 들어가려 할 때 나는 당귀 방이 아닌 복도 밖으로 뛰쳐나간다.

​셔츠 단추들 사이로 당귀 진물을 가득 묻히고 빠져나오는 축축한 손

​단추가 튕겨 나갔으면 아마 실밥을 쥐고 한참을 부엌에 서 있을 것이다. 새카맣게 그을린 찜기 앞에서 당귀 향과 탄내를 동시에 훅 들이켰다. 찜기에 물을 붓자 엄청남 연기가 솟아오른다. 흰 김과 연기가 동시에 당귀 방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손은 가끔 답답해 죽겠다. 손을 보고 있는데도 흰 김과 연기에 관한 생각을 참을 수 없다. 관자 놀이를 스쳐 머리 주변을 맴돌아 구름을 형성해내는 형국으로 나를 감싸고 돈다.

​아무것도 못 하면 어떡해?

​구름이 감싸고 토닥거려준대도·····

​그러고선 당귀들에게 찾아가 스콜을 흩뿌려놓는다면·····

​나는 니트릴 장갑을 갈아 끼고 셔츠 단추들 사이를 지나 단숨에 당귀 방을 향해 손을 집어 넣는다.

​온몸 일으키기

​ 


지난해 구청에서는 이 길거리의 보도블록을 상당 부분 들어내고 새로운 블록들을 깔았습니다. 그 뒤로 나도 이 거리에 같이 누워있습니다.

​배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따금 한국어를 쓰다 침을 흘립니다. 침은 내 몸에 자연히 스며듭니다. 나는 한국어 구사력과 침 흡수력이 좋거든요! 이건 방듬 지나간 버스 밖으로 들렸던 라디오 광고에서 습득한 말투입니다.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집니다. 근처 국밥집에서는 배부른 기사님들이 쏟아집니다. 기사님들은 정겹습니다. 정겹다는 건 오래 누워 있었다는 거죠? 우리 좀 오래 봤거든요! 기사님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등 돌리고 싶어질 때 등 아래로 표정을 모르는 기억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기억은 나를 자주 간지럽게 하느라 등 아래에 있는 흙들을 한동안 휘저어놓았습니다. 그것에 닿는 손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종종 실패했습니다.

나는 내 등을 세워 완전히 앉아 있는 모습도 상상해봤습니다. 움직이고 싶을 때마다 몸에서 거친 부스러기만 묻어 날 뿐 나에겐 일어나 앉을 근육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근육만 감수분열처럼 늘어났습니다.

그럼 여전히 누워 있는 걸 잘해보기로 합니다. 나는 답답한 기분에 뛰어나거든요! 망각이 블록들 사이에 껴 있습니다. 망각은 기억의 별명이 되기도 합니다. 기억처럼 오랫동안 내 뒤통수를 감쌌습니다. 기억은 나의 등 아래에도 울퉁불퉁한 허리 옆에도 나의 배 위에도 있을 테고

거친 피부 위로 얹힌 기억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습니다.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며 매연을 풍기던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도, 초등학생이 떡볶이 양념을 흘리고 갈 때도, 욕설을 남발하는 사람이 괴성을 지를 때도, 이제부터 누구세요! 애인들끼리 싸우는 육성도 내 아래로 많이 남겨두었습니다. 태풍이 와서 나무가 어쩔 수 없이 내 위로 쓰러졌을 때도, 나는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요즘 들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움직이는 데에는 지진이 효과적이겠지만 태풍도 의외로 효과적일 겁니다. 태풍이 오면 블록들은 잠시나마 흔들리고····· 그보단 내 앞에서 주저앉아 울던 사람에게 흔들릴 것만 같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마다 말을 걸고 싶어집니다. 며칠 전에 여기 앞에서 웅크리지 않았나요? 내게 잠시나마 희망을 주고·····

이렇게까지 얘기한 모양인지 누군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를 옮겨줄 건가요?

끈적한 먹이를 얹고 느리게 걸어가는 개미는 나의 천적입니다. 개미를 보는 사람은 내 위에 떨어뜨린 콘택트렌즈를 주웠습니다.

차라리 낮잠을 자겠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싶지 않거든요. 내 곁에 있는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내 등을 세워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앉았던 생각은 전력 질주할 생각으로 횡단보도 너머로 달려갔습니다. 주말에 비바람이 올 거란 예보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수상소감]


( )

우리는 반씩 나눠 가진 원 사이로 차오른 표면에다 우리의 이름을 띄워놓을 수 있다.

*

나는 내 이름을 꽤 좋아한다. 차 현 준,이라는 모양을 보고 있자면 하나의 원을 중심으로 온갖 획수가 사방으로 뻗어나간 형국을 이루고 있다.

2020년이 되던 순간에 나는 쿠바에 있었다. 만기된 군 적금과 아르바이트 일당을 모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계획을 짜서 이름대로 쭉쭉 뻗어나갔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그곳에서 액운 인형을 태우고 있었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겪었던 수많은, 찬란한 쿠바의 노을과 바다와 거리를 잊을 수 없다.

시는 이름도 풍경도 아닌 채로, 나를 구석구석 드나들었다. 나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시가 다녀간 곳을 살펴본 덕에 내가 지닌 원 속으로 시를 따라 손을 넣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앉아 있을 때는 원 뒤로 넓은 공간을 한없이 가질 수 있고, 누워 있을 때는 원 아래로 깊어진 깊이를 가질 수 있다.

내가 원 속에서 곱씹어본 말들을 원 밖으로 꺼내고 펼치게 되어 얼떨떨하다.

*

괄호에다 띄워놓고 싶은 목록이 많다.

아픈 손가락으로 남고 싶지 않아 더 사랑할 가족들에게. 내 원 안으로 끝까지 흰빛으로 뛰어갈 반려기쁨에게.

시를 잘 쓰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을 먼저 일깨워주신 박상수 선생님과 늘 같이 있고 싶어요. 정확한 상상력을 위해 집요하게 살펴주신 서대경 선생님, 선생님께 배운 자세를 잊지 않겠습니다. 시를 세심히 살펴주신 조연정, 하재연, 황인찬 심사위원님께 충만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작품과 책과 작가 들에게.

은희 같던 제게 기꺼이 김영지 선생님이 되어주신 장수영 선생님, 차고은 선생님, 우선하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연, 재연, 승우, 지은, 주명, 승민, 병호, 영균, 민진과 지냈던 열여섯 살. 형구, 효근, 승법, 지안, 도경, 동진, 경민, 도현, 민욱과 머물렀던 기숙사. 지영, 재림, 혜정에게 받은 케이크. 종섭, 동민, 경훈, 민수, 상인, 상윤, 준녕, 규형, 동준과 살았던 충주. 의진, 수연 누나, 도희, 경민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지현, 세빈, 민주가 걸어나갈 각자의 방향. 명성이 지켜주던 묵묵한 신뢰. 용환과 있었던 2학년 7반. 병준에게 포옹처럼 배운 포용. 준화, 서원이 형과 일하다 듣던 음악. 쿠바에 있을 때 정성껏 살펴주신 Jorge, Anita, Maria, Obed. 보고 싶어요. 잘됐으면 좋겠는 한결, 형욱, 수민, 윤지, 예린, 예진에게. 내 시를 믿어준 태의에게는 기쁜 일들이 많이 찾아가기를. 내 시를 같이 고민해준 민성이 형, 보영 님, 서진 님, 연우 님, 호철 님. 감사합니다.

꿈을 꾸는 것보다 잘 자길 바라는 현실적인 사려를 건넬 줄 아는 이지은과 사계 내내 밤이 찾아와도 숨지 않고 목소리를 들려준 김태연과 확실한 게 없어도 누군가의 마음에 꽃을 띄워놓는 백예린에게는 내가 만든 문장들을 아름답게 불러주고 싶다.

왕가위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여준 세상. 민희진이 구축해놓은 세계와 숨결. 혜원, 은숙, 재하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마을. 태희, 혜주, 지영이 씩씩하게 걸어가 가닿을 미래. 절망하던 미아를 이끌어준 세바스찬의 리듬으로 살아나가기. 조엘, 클레멘타인과 함께 가보고 싶은 몬토크. 순자가 틔워놓은 미나리.

다음과 같은 음반들이 원 속에서 오래도록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혁오– 『사랑으로』, Taylor Swift – 『folklore』, 자우림 – 『영원한 사랑』, 언니네 이발관 – 『홀로 있는 사람들』, The Volunteers– 『The Volunteers』, Lorde – 『Pure Heroine』 『Melodrama』, dosii – 『반향』, 이소라 – 『이소라 7집』, 엄정화 – 『The Cloud Dream of the Nine』, 아이유 – 『Love poem』, f(x) – 『4 walls』, 백예린 – 『Our love is great』 『tellusboutyourself』, AKMU – 『NEXT EPISODE』, Red Velvet – 『Perfect Velvet』 『The Red Summer』, 유아 – 『Bon Voyage』, 윤하 – 『END THEORY』, 태연 – 『INVU』

더 말하지 못한 이름들은 언젠가 괄호에 띄워놓을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나의 자리에서 열심히 잘 써 나아갈 테니 때때로 서로 오가며 내가 선보인 것들에 관해 함께 얘기해볼 시간이 풍부하게 만들어지기를. 우리가 이 세상에다 더 우아하고 근사하게, 화내고 울더라도 결국엔 웃고 즐기기를. 그러다 표정들도 악몽 없는 잠을 잘 자기를.



[심사평]


2022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시 부문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508명의 많은 응모자가 작품을 보내주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물질적이고도 가시적인 효용만이 점점 더 중시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어찌 보면 가장 비효율적인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 작업에 여전히 이처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열정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어쩐지 감동적이다. 그래서일까. 좀더 신중한 자세로 심사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매년 하게 된다. 올해는 8명이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올랐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한층 더 높아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채현, 김도현, 김예진, 이영은, 이정화, 은세임, 정해은, 차현준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으며 본심을 진행했다.

본심을 위한 개별 심사를 진행하면서 내가 주목했던 작품은 이영은의 「생동」, 이정화의 「열쇠」, 은세임의 「여름 채집」, 차현준의 「당귀 방」이었다. 이영은의 작품 중 「해시태그 동시대성」 같은 시가 드러내는 근미래적 상상력 혹은 일종의 ‘허망함’의 정서가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대체로 세련된 언어들의 조직이 어떤 분명한 감정으로 응집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이정화의 작품 중 「정원에 공」 같은 시가 보여주는 간결하고 탄력 있는 배치들이 매력적이었지만, 보내준 응모작 중 그러한 작품을 많이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충분히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써낸 응모자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에 대해서 좀더 고민해본다면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심사위원들이 고르게 지지한 작품은 은세임과 차현준의 것이었다. 다른 응모자의 시들이 기술적으로 화려한 반면 어쩐지 읽자마자 휘발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면, 은세임의 시들은 다소 소박한 문장들의 전개 속에서 분명한 인상과 함께 오랜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 차별화되었다. 「여름 채집」 두 편과 「탄생」 같은 시는, 은세임의 문장을 빌리자면 어쩐지 “음악의 전개를 눈으로 보는 것 같”(「말이 되는 이야기」)은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그만큼 문장들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매끄러웠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마에 축축하고 찬 것이 떨어져/정신이 들었다.//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울기라도 한 듯/눈이 젖어 있어//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였다”로 끝나는 「여름 채집」은 개인적으로 이번 심사에서 만난 시들 중 가장 인상적인 한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한 깨달음이 전해지는 문장들이 섞여 있는 몇 편의 시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은세임의 시와 함께 마지막까지 당선작으로 고민한 시는 차현준의 것이었다. 차현준의 시는 응모작 중 가장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당귀 방」 「루꼴라」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식물 연작은 최신의 트렌드, 혹은 젊은 감성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는 시이다. 그것은 단순히 식물 키우기나 게임적 상상력 등으로만 단순화할 수 없는, 이른바 ‘공간’에 관한 것이다. 차현준의 시를 읽으며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한 지점은 공간을 창출해내는 그의 능력이었다. 공간을 창출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자기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누가 어떤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예민한 정치·사회적 질문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차현준의 식물 연작은 이처럼 많은 것을 환기하는 시가 되고 있다.

은세임과 차현준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오랫동안 숙고하였다. 논의를 잠시 쉬어갈 때 다른 두 심사위원이 들려준 반려식물에 관한 얘기들은 마치 심사의 일부인 듯 흥미롭기도 했다. 하늘이 너무 맑았던 그날의 심사장에는 왠지 모르게 싱그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물론 은세임과 차현준의 시 덕분이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둘에게 다른 방식의 애정을 느꼈기에 한 명의 당선자를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이 심사가 다름 아닌 바로 신인상 심사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차현준의 「당귀 방」이 좀더 ‘새로운 시’이자 ‘다른 시’, 그리고 ‘젊은 시’일 것이라는 판단에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차현준을 22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수상자로 결정한 것은 앞으로 그가 쓸 시를 통해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될 것, 다르게 느끼게 될 것이 더 많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차현준의 다음 시를 기다리고자 한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조연정(『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이번 신인상 응모작 원고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시에서 반영하고 만들어내는 자족적 세계의 가능성이란 어느 만큼일까,와 같은 질문이었다. 전반적으로 고르고 안정되며 수준 높은 언어의 장소에 도달한 작품들이 상당수였다. 그곳에서 그려내고 있는 관계나 세계의 양상이 실재에 속하든 판타지를 그려내든, 외부로부터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세계의 변동과 변경 가능성이 갈수록 축소되고, 특히 폐색적 공기가 짙어진 팬데믹 이후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문학적 반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반응의 구체성이 가장 개성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을 구별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최종적으로 주목한 대상은 강채현, 이정화, 정해은, 차현준의 작품이었다.

강채현의 「토마토 소바」 외 작품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108」이나 「Long take」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세계의 교차 또는 실재와 판타지의 중첩이 풍기는 묘한 냄새들이 좋았다. 다만, 화자의 시점이나 드러나는 인물들 간의 관계가 평평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화자의 시야가 좀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중구난방 뻗어나가며 타인들을 만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정화의 「열쇠」 외 작품들은, 유려한 진술과 상쾌한 장면의 도약이 인상적이었다. 「껍질 요리」와 같은 작품에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시적 분위기의 매력은 다시 보아도 새롭다. 「연극 연습」과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서늘함도 좋았는데, 반어적 표현이 갖는 정서의 반경이 이미 짐작된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정해은의 「김성미 산부인과」 외 작품들이 그 행보를 응원해주고 싶은 작품이라는 데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동의하였다. 모티프와 시적 서사가 아주 새롭지는 않음에도, 최근의 시들에서는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운 발화 형식의 선명함이 뚜렷했다. 표제작과 「스노우볼」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장소의 이미지에는 독자의 애정을 자아내는 요소들이 있다. 끝까지 이 작품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며 아쉬워했던 것은, 화자가 세계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닿는 따뜻한 센티멘털이 반복적으로 재현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불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차현준의 「당귀 방」 외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작품들에 나타나는 식물과 관련된 장소들은 생활 세계의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가상적 리얼리티를 창출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집요한 진술을 통해 만들어내는 공간의 구축과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삶의 양태에 결국은 설득될 수밖에 없었다. 차현준의 작품에 나타나는, 식물을 돌보는 노동과 행위를 수행하며 끊임없이 어떤 풍경을 상상하는 화자는 이 세계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열패감에 맞서고 있다. 최소함의 극대화 같은 이 태도는, 지금 이 시대에서 시를 읽고 쓰고 건네고자 하는 우리를 연상시킨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나’가 조금쯤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아마 차현준의 시가 갖는 설득력의 한 힘이 아닐까 한다.

당선자에게 깊은 축하와 지지를 보낸다. 결국은 쓴다는 것으로써, 축소되어가는 우리 존재의 사그라듦에 맞서고 있는 응모자 여러분께도 우정과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하재연(시인)

올해 응모된 작품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 허수가 적었으며, 시적 구성과 문장의 숙련이 상당한 작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한편 그러한 작품들의 거개가 시가 시작한 자리에서 멀리 나아가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를 개진하는 대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작품이 많았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어쩌면 이러한 경향이 작금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다. 삶이 펼쳐지지 못한다면 시 또한 펼쳐지지 못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난국을 뚫고 그다음의 세계를 상상하는 시, 멀리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지면을 박차고 도약할 힘을 비축하고 있는 시를 찾고자 했다. 문학이란 삶보다 앞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지언정, 삶이 도달할 자리를 미리 상상하고 예비하며 더 나은 삶을 준비하는 일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김도현의 「섬광」 외 9편은 사물의 감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편들이 매력적이었다. 넘쳐나는 사물들과 행위들을 통해 풍부한 결을 갖추는 것은 좋았지만, 그 풍부함이 낭비되고 있다는 인상 또한 있었다. 시를 추동하는 분명한 동력이 있다기보다는 문장이 문장을 끌어가고 있어, 하나의 행, 하나의 연을 보면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지만 그것들이 좀처럼 잘 쌓이지 않아 끓는점에 도달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김예진의 「녹영」 외 9편은 감각과 감성이 잘 어우러진 섬세한 문장들이 미더웠다. 유리컵에 심은 콩 하나를 두고도 풍부하게 확장되고 이어지는 이미지들의 전개는 투고자의 감각이 얼마나 세련되고 잘 벼려진 것인지 보여주었으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이 투자된 행과 연은 오히려 시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저 풍부한 확장과 전개의 시편들이 모두 내면을 설명하는 데 환원된다는 사실 또한 아쉬움을 남겼다. 시는 낯선 것들과의 마주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세임의 「여름 채집」 외 10편은 가장 고른 완성도를 보였다. 선명한 언어를 통해 그려지는 선명한 이미지들과 더불어 잘 배치된 행과 연은 투고자의 시적 숙련이 상당함을 짐작게 했다. 타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세계를 자유롭게 펼치는 이 작품들에서 시란 세계를 감각하는 작업임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동어반복적이며 회귀적인 말하기가 상기시키는 ‘비어 있음’은 어쩌면 이 시들이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시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세계를 뚫고 나가려는 의욕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었던 것은 정해은의 「김성미 산부인과」 외 9편과 차현준의 「당귀 방」 외 10편이었다. 「김성미 산부인과」 외 9편은 표제작의 강렬함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탄생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이 시적 기획은 다른 투고작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시도였으며,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문장들은 투고자의 시를 계속 읽고 싶어지게 했다. 그러나 시가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저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의 세계가 다소 감상적이라 시적 긴장을 해친다는 점, 그리고 잘된 시와 그렇지 못한 시의 격차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남겼다.

당선작은 「당귀 방」 외 10편으로 결정되었다. 세계를 감각하고 탐지하려는 의욕이 넘치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또 퍼져가는 것처럼 시의 언어 또한 그렇게 세계를 자꾸 더 그리고, 또 만지려 하고 있었다. 넘쳐흐르는 언어를 따라 읽으며 이 과도함의 연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저 있었으나, 저 맹렬한 언어의 전진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당귀들 사이에서 향을 맡고, 그것들을 헤아리고 또 만지며 계속 세계와 접촉하려는 시적 태도는 다른 투고작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위적인 힘이었다. 어디로든 당도하려는 이 호기로움이야말로 오늘의 시에 필요한 저력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이 감각과 언어의 과잉이 하나의 스타일에 이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예술이란 결국 스타일의 문제이며, 그 어떤 아름다움과 선함조차 적절한 스타일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빛이 바랠 따름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을 기꺼이 맞이하기로 하였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당귀 방」 외 10편이 보여주는 저 낯설고 거친 힘이 우리를 지금껏 보지 못한 먼 곳으로 데려다주기를 기대한다.

투고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끝맺고 싶다. 세계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한 요즘,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밝고 맑은 상상이 절실하다. 여러분이 전해주신 그 전망의 기록을 읽으며 우리가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우리의 문학이 우리의 삶에 작은 빛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것이다. 황인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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