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항사 / 박성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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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시인의 시편들을 따라 읽으니 나의 옛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들어가서 오랜만에 “물밥 한 그릇”도 떠올려본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우리가 사는 인생에 대한 질문(풍경)이요, 그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있다. 특히 고단한 노동에 주목한 시편들은 참 따스하다. 허름한 식당 창문에 핀 하얀 성에꽃과 같은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시구에도 크게 공감한다. 마치 바람벽에 쓴 것 같은 이 시편들을 읽으며 삶의 행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 문태준 | 시인
박성우 시인 약력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국어교육) 졸업
제37회 근로자 문화예술제 금상
제11회 금융인문화제 대상
부처님의 발톱깎기 / 박성우
아버지께서
한참을 웅크리고 발톱을 깎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 것이 되어 버린 것들을
그렇게 모가 난 삶의 모서리들을
딸깍딸깍 떼를 잘 입힌 봉분(封墳)처럼
둥글고 매끄럽게 깎아 내고 있다
아버지 웅크린 그 모습 그대로 마른
생불(生佛)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다
순간, 나는 아이처럼
깊고 고요한 바닥이 무서워 아버지 하고
그 고요를 살며시 흔들어 놓았다
아버지 대답도 없이 그저 고개만 천천히
나를 찾아 먼 길을 돌아오신다
들일 나갔다 집에 있는 짐승들을
잠시 거두러 오실 때처럼
마루에 앉은 우리들을
물끄러미 다 같이 거두시고는
다시 들로 천천히 돌아가신다
마른 등은 그믐처럼 차고 깊게 구부러지고
푸른 무릎 사이로 얼굴이 천천히 묻혀 갔다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올 것이다
둥글고 매끄럽게 떼를 잘 입힌 봉분(封墳)처럼
삶의 모서리들을 딸깍딸깍 깎아 내며
주위의 안녕을 주섬주섬 거두어 갈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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