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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수 시집<사막을 건넌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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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6회 작성일 20-01-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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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외 / 1

 

 

 

 바람이 사이렌처럼 울어댔다 나는 낮과 밤이 왕래하는 창가에 앉아 바람의 세기와 유리창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담장 아래 고여 있는 사계절 꽃물로 낯익은 소년의 머리색깔이나 바꿔 놓고 있었다 사이렌은 요란했다 바람이 되고 남은 오후는 사이렌이 되는 게 분명했다 하나로 모은 귀는 사이렌의 것이었다 그런 후에 천천히 먼지가 되어가는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마른 꽃으로 묶은 날은 골목길을 걸어가도 서러웠다 소년은 낡은 천 조각에 싸여 있던 한번 본 남자보다 더 오래 남자가 되어야할 것이고 사이렌은 슬픔만큼만 창문을 열고 소년 곁에 서 있었다 바람은 경광등 불빛처럼 급하게 달려가고 한번 본 남자는 그보다 더 오래 누워있는 사람들을 이미 만난 적 있다 소년은 창가에 서 있는 사이렌을 머리맡에 옮긴 후에 마른 꽃대로 쓰러진다 태풍이 오고 여름이다 바닷물이 다 쏟아질 때까지 우기이다 해가 바뀐 후에도 사이렌소리는 요란하고 창문을 열고 있던 소년이 시신처럼 흐느낀다

 

 

 

 

식음하는 당신을 식음하는

 

 

 

 달이 백년을 견딘 두개골처럼 제 안의 유령들을 흘리면서 옅어진다

 

 열광하는 어둠,

 

 당신이 죽었다 당신의 죽음을 내 뜰에 심는 일은 꽃들에게 빙하기의 시작을 알려주는 호외처럼 큰 슬픔이 분명한데 달에 떨군 눈알마다 웃고 있는 당신을 식목하는 당신,

 

 당신이 죽었다 어둠을 분석하거나 관찰하던, 당신이 빠져나간 저 환한 구멍 속에 머리를 두고나온 나도 긴 팔과 긴 다리로 죽어있다

 

 물에 불은 곡물을 씹지 않고 삼키고 있는 견고하고도 슬픈 구멍, 그 속을 쉬지 않고 걸었는데 보이는 것은 설원(雪原)이다

 

 휘몰아치는 폭설 탓에 무릎까지 쌓인 당신,

 

 눈을 치우면 문밖은 북쪽이고 죽은 자들이 기어오를 벼랑이다 나를 찾은 당신을 벼랑 아래로 던져버리기를 스무 번째라 하였던가? 열 번째라 하였던가?

 

 당신에게 흘러 보내는 긴 강이 얼고 있다 한 세기든 두 세기든, 당신을 본 눈알들이 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16세기의 신성의 어린이로써 여행자인 그리스도를 이고 가는 크리스토 포루스를 열쇠고리에 그렸다. 그럼에도 열쇠를 사용하는 일이 일생동안 허락되지 않았기에 숙명적으로 가난하다

 

 벌레를 씹어야하는 간헐적인 식사는 떠내려가는 눈알들을 건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노역,

 

 나를 돌우물에서 건져냈던 손은 천년성벽의 부조가 되기 직전 갈대로 엮은 강보 속에 튼튼한 손수레와 수많은 손발들을 넣어주었다

 

 나는 몇 번을 더 죽은 후에도 불어난 강가에서 지느러미 없이 태어난다

 

 목이 꺾인 갈대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식탁에 놓인 의자처럼, 그런 후에 식음하는 당신을 식음하는

 

 

 

 

박병수

2009<시사사>등단

시집<사막을 건넌 나비> 



우나무노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더 많은 빛이 아니라 더 많은 볕임을 말한 바 있다. 차가운 빛이 아니라 따스한 빛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어두운 시대를 경험하면서 내린 실존의 진단이다.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려 한 인간의 역사가 더 짙은 암흑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둠과 빛은 낮과 밤처럼 삶의 양면이다. 이 둘은 빛 속에서 그림자를 거느리듯이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박병수 시인의 시적 사변은 단연 어둠과 밤을 지향한다. 그는 현대의 이성과 계몽이 몰아낸 심연으로 다가서려 한다. 물론 시인의 의도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한다. 고갈과 폐허의 내면의식이 외부의 어두운 풍경과 만나고 있다. 구모룡(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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