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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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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77회 작성일 20-02-25 09:30

본문

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 출간

 

이영식 시인은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고, 2000{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공갈빵이 먹고 싶다], [희망온도], [}가 있고, 17애지문학상을 수상(수상작품 [꽃의 정치)했다.

이영식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인 {꽃의 정치}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가 가능한가라는 반대 방향에서, 서정시가 가능한 이상적인 세계를 극적으로 창출해낸다. 사랑의 정치, 꽃의 정치는 더없이 숭고하고, 더없이 성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 질러놓고 보는 거야

가지마다 한 소쿠리씩 꽃불 달아주고

벌 나비 반응을 지켜보는 거지

그들의 탄성이 터질 때마다

나무에서 나무로 번지는 지지 세력들

꽃의 정부가 탄생되는 거라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네

봄날 내내 범람하는 꽃불을 봐

꿀벌은 꽃이 치는 거지

벌통으로 키우는 게 아니야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 들

그게 며칠이나 가겠어

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

같은 꽃 같은 향기더라도

오는 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행복해 하는 거야

 

봄날은 간다

꽃의 정부가 다하더라도

후회는 없어

튼실한 열매가 뒤를 받혀 줄 테니까

----[꽃의 정치] 전문

 

이영식 시인은 낭만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꽃의 정치]는 현실 정치에 대한 환멸의 소산이라는 점에서는 낭만적이고, [꽃의 정치]는 머나먼 저곳의 정치라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고,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꽃의 정치]를 실현시키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는 꽃의 정치의 목표가 되고, 꽃의 정치는 이상세계와 이상세계의 행복을 보장해주게 된다. 정치란무보수 명예직으로 꽃 피어나는 것이지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것 같은 꼼수와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라는 시구에서처럼, 이웃 국가의 정책으로 꽃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치란 진실이 없으면 피어나지 않는 꽃이며, 전국민의 행복이 보장된꽃놀이패의 축제를 연출해내기 위해서는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와 전통은 [꽃의 정치]의 토대가 되고, 이 역사와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이 반목과 대립이 없는 사랑의 정치가 실현될 수가 있다.

꽃의 정치와 꽃의 정부는 우리가 이영식 시인을 통해서 들은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 만인들의 행복의 향기가 천리, 만리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17회 애지문학상 심사평에서

곰탕집 뒤란/ 뼈다귀들이 쌓여 축제를 벌이고 있다// 내가 털어 넣은 한 사발 사골국물도/ 저들의 사지四肢로 고아냈을 터, / 갈비뼈 등뼈 다리뼈살점 발라주고 / 말갛게 씻긴 백골들, 협찬이라도 받은 듯/ 정오 햇발을 제 깜냥 받아 누린다/ 그늘 한 점 없다// 삶의, 삶에 의한,/ 삶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뼈// 탈탈 털어도/ 먼지 한 톨 떨어질 것 없는/ 뼈다귀들은 모서리마다 곡선을 지녔다/ 원심怨心이 아니고 원심圓心이다/ 들끓지 않는다// 생몰生沒을 건너온 어법/ 명징하다/ 뼈바늘 같은 시 한 편 쓰고야 말겠다는 듯/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

―「사물의 편에 서다=, 전문

 

이영식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시를 노래한 작품만큼이나 사물들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공평한 의자에서는 지상에 사뿐이 내리는 눈송이에게 기꺼이 의자가 되어주는 빌딩, 리어카, 소잔등 등의 덕을 예찬한다. 또한 빈집에서는 말벌과 고양이와 잡초와 풀벌레에게 생의 터전을 제공하는 빈집의 덕을 칭송하고 있다. 이러한 사물들이 시인의 눈에 각별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자신의 욕망에 매몰되지 않고 타자들을 위한 배려와 공감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고, 그들의 번성을 기뻐할 뿐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인용된 시에서 사물의 편에 서다라고 하면서 사물의 덕을 옹호하고 있는 대목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용된 시에서 시인은 동물들의 를 칭송하고 그것들을 닮은 뼈바늘 같은 시 한편을 쓰고 싶다고 고백한다. 앞서 분석한 시편에서 시가 성스럽고 신성한 종교적 대상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시인이 뼈를 신성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뼈들이 신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타자를 위해서 공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살점 발라주고/ 말갛게 씻긴 백골들은 다시 저들의 사지(四肢)를 고아냈을 터사골국물이 되어 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발라진 뼈들이 다시 고아져 사람의 허기를 채워준다. 그러면서도 뼈다귀들은 모서리마다 곡선을 지녔으며, “원심(怨心)이 아니라 원심(圓心)”을 지니고 있다. 발라지고 고아진 뼈는 삶을 초월했으며, 죽음도 초월했다는 점에서 생몰(生沒)을 건너온 어법이라 할 만하다. 마음이 맑은 시인이 모든 것 다 내어주고 곰탕집 뒤란새하얗게 빛나면서 쉬고 있는 뼈다귀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성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사내가 허공을 걷고 있다/ 하루 스물네 점/ 쉼 없이 건너는 시간여행자/ 외쪽불알 추로 세워/ 좌우 치우침을 모른다/ 아무리 걸어도 늘 제자리/ 사내의 구두는 발자국도 없이/ 소리로만 걷는다/ 입주 사십년, 붙박이/ 우리 부부의 내밀한 밤을 지켰고/ 아이 둘을 키워 내보냈다/ 바람벽에 붙어살면서도/ 제 몸 밖을 꿈꾼 적 없는 사내/ 내부를 열어보면/ 곁을 내주며 서로 품고 돌아가는/ 톱니의 가계家系가 드러난다// 속도전의 시대? / 사내는 아날로그 식 보폭이다/ 허공에 겹겹 결을 내어/ 집안 구석구석 종소리로 채우고 있다/ 고물상도 등 돌리는 저 몰골/ 나는 사내의 보법을 배우고 싶다/ 세상 어떤 바람에도 어김없이/ 또박또박 걸어가 닿는/ 무량한 세계, / 다 닳고 낡은 구두가/ 기적처럼 하루를 건너가고 있다

―「괘종시계 걷는 법, 전문

 

시인은 깨진 밥그릇을 위한 기도라는 시에서는 깨진 밥그릇에 대해서 늘 몸 정갈하게 닦고 기다리다가 삼시세끼 챙겨주던 그런 여자”, 혹은 치장이라면 자기 몸에 자나 목숨 자를 새겨 나의 복 나의 장수를 빌어주던여자라고 하면서 그 덕을 칭송하고 있다. 그리고 신이시여! 맹목의 사랑 퍼주고 간 그 여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원하옵건대 다음 생에는 그가 나의 주인으로 오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아무런 정감도 없이 대하는 밥그릇의 덕성을 칭송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결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괭종시계를 걷는 법에서 괘종은 어떤 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먼저, 40년의 세월을 보낸 낡은 괘종시계에 대해서 다 낡은 구두를 신고 있는 늙은 사내로 인격화하고 있는 대목에서 사물에 대한 시인의 태도와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은 이영식 시인의 시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괘종시계를 보면서 나타내는 늙어가는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시적 화자의 태도는 그것이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 몸 밖을 꿈꾼 적 없는 사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는 낙타, 혹은 성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의 내부에는 곁을 내주며 서로 품고 돌아가는/ 톱니의 가계(家系가 자리잡고 있어서 조화로운 전근대적인 사회라든가 신의 뜻대로 세상이 운영되는 섭리의 원리를 체현하고 있다.

그것이 지닌 풍모는 어떠한가? 그것은 속도전의 시대에 존재하면서도 아날로그 식 보폭을 유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사내의 보법을 배우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사내가 견지하고 있는 보법이란 세태의 변화에 아랑곳 하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는 보법이다. 중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데도 그러한 세계 속을 종횡무진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보법을 닮았다. 그것은 고물상도 등 돌리는한심한 몰골을 하고 있지만, “또박또박 걸어가” “무량한 세계에 가 닿는다. 시적 화자는 고물상도 등 돌리는 저 몰골이라고 해서 한심한 듯이 묘사하고 있지만, 그러한 묘사 속에는 시간의 때가 묻어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고색창연한 색채가 뿜어내는 기품과 그윽함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것은 무량의 세계를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도 끝도 없는 광활한 세계, 인간의 의식 너머로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아득한 지평에 속하는 괘종시계에서 성스러움과 숭고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숭고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을 보자.

 

종로 피맛골/ 외진 그늘자리 목련나무 한 그루/ 불상놈처럼 서있다// 8차선 도로에서 숨어든/ 직립동물들이 오줌 내갈기고/ 토사물 쏟아놓고/ 고얀 냄새 풍겨대는 사이/ 겨우내 얼고 떨며 노숙하던 나무가/ 마술을 시작하고 있다// 작은 솜털모자 속에서/ 하얀 새 한 마리 꺼내 놓는다/ 새는 새를 낳고/ 바람을 들이고 꿈을 펴고/ 어느새 새떼가 되어/ 피맛골 좁은 골목/ 새하얀 날개들의 천국이다// 새들이 봄 햇살 물어 나른다/ 골 먼지, 찌든 때,/ 껌 딱지처럼 붙었던 얼룩 닦아내고/ 연두 빛 새 이파리 들여앉힌다/ 며칠째 노역으로/ 골목 묵은 기억을 몽땅 들어낸/ 목련나무,/ 세상 환하고 향기로운 걸레를 보았다

―「걸레, 전문

 

우유빛 순백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봄날의 목련꽃에서 걸레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이 사물의 편에 서서 그것이 지닌 덕성을 읽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러한 발상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봄날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피어나는 목련꽃을 보면서 그것을 향기로운 걸레로 예찬하는 것은 역시 목련이 지니고 있는 숭고한 아름다움과 성자의 덕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련꽃이 지니고 있는 덕성이란 무엇인가?

목련나무는 종로의 피맛골 자라에서 불상놈처럼 서 있다.” 목련나무가 불상놈처럼 서 있는 것은 그것이 버릇도 없고 예의도 차릴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애써 천한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립동물들이 내갈긴 오줌이라든가 고얀 냄새 풍겨대는토사물들을 청소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목련나무는 어떻게 그러한 궂은일을 해내는가? “작은 솜털모자 속에서/ 하얀 새 한마리 꺼내 놓는데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된다. 새는 또다른 새들을 낳고, 또한 새들은 바람을 들이고 꿈을 펴고”, “봄 햇살 물어 나르, “골 먼지, 찌든 때,/ 껌딱지처럼 붙었던 얼룩 닦아내고/ 연두 빛 새 이파리를 들어앉히고 결국은 골목 묵은 기억을 몽땅 들어낸.

목련나무가 작은 솜털모자에서 꺼내놓은 새 한 마리는 물론 목련나무가 피워 올린 목련꽃의 은유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목련꽃 한 송이가 그처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목련꽃이 새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는 새를 다룬 시가 두 편 있는데, 먼저 홀딱벗고새에서는 검은등뻐꾸기라는 새가 등장한다. 그것은 부처님 앞에서도/ 홀딱 벗고/ 비구니스님 목탁 위에도/ 홀딱 벗고라고 노래하면서 깊은 도량에” “음란코드를 심어놓는다. 또한 부처와 함께 놀다-미안야 순례4에서는 참새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부처님 머리위에 물똥을 냅다 갈기고 달아난다. 이처럼 권위와 신성을 무시하는 검은등뻐꾸기라든가 참새 한 마리는 성스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처님의 권위라든가 선악의 도덕 관념과 같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이 순진무구한 천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오물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목련꽃이 새에 비유되는 것은 이영식 시인의 문법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셈이다.

목련꽃은 그 색깔처럼 소박하게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며 직립동물들이 만들어내는 오물들을 치우고 정화한다. 그래서 시인은 그것을 세상 환하고 향기로운 걸레라고 명명한다. 가장 낮고 가장 지저분한 오물에서 자라면서 주변을 환하게 정화시키는 목련은 가장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과 다르지 않는 셈이다. 목련꽃에서 성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에 숭고한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시적인 발상은 지극히 이영식적인 것이다.

아우슈비츠 사건 이후에 더 이상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횡행하는 시대, 그리고 미래파 이후 전위와 환상만이 현대적인 시의 문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횡행하는 시대, 이영식 시인은 왜 서정시가 써져야 하고 읽혀져야 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정시가 지닌 저력과 힘이 결코 연약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기술복제 시대에 언어의 유희로 제작된 텍스트가 흉내낼 수 없는 수공업적 예술 창작이 지닌 기품과 분위기를 통해서 시인은 제작된 작품이 가지기 어려운 그늘과 깊이의 아우라를 창출하고 있다. 그것은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숭고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시인이 창출하는 숭고한 아우라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강력하기에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예술의 본질이 인쇄시대와 정보화 시대에 살아남았듯이, 요즘 시끄럽게 떠들어내는 포스트 휴먼 시대라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돌올히 살아남아서 포스트-휴먼의 영혼을 정화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도록 한다.

----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 양장, 도서출판 지혜,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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