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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라는 슬픔 / 이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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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19-03-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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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대장장이의 노래
- 이성목 시집 『함박눈이라는 슬픔』 편집 후기



1
이성목 형하고는 2000년 새로운 천년이 열리던 그해 여름 처음 만났다. 그해 여름 안산, 서해의 염전 버려진 소금창고에서였다. 어느 새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서울을 떠나 고향 춘천에 와서 자리를 잡았고, 형은 안산을 떠나 대처로 떠돌다 광주에서 새살림을 차리고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 형은 세 권의 시집을 냈다. 『남자를 주겠다』(모아드림, 1999), 『뜨거운 뿌리』(문학의전당, 2005), 그리고 『노끈』(애지, 2012). 시집 『노끈』의 발문은 내가 썼는데, 그 제목이 ‘포월자(匍越者에), 나는 그를 짝사랑했다’였다. 실제로 그는 초월이 아닌 포월을 통해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그런 형을 나는 짝사랑했다. 그 시집을 끝으로 형을 만나지 못했다. 간간히 광주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호구지책을 마련한다는 일이 형이나 나나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까닭이었다.

2
달아실출판사를 만들고 달아실시선을 내면서, 언제고 이성목 형의 시집을 꼭 넣고 싶었다. 형은 시를 쓴 이래 지금까지 늘 무명이었지만, 내게 있어 형의 시는 세상의 그 어떤 유명보다 빛났다. 올 연초에 전화를 걸었다. “형 시집 냅시다.” 나로서는 농담이 아니었다. 진지하고 절실한 제안이었다. 형의 대답은 짧았다. “박 형, 제안은 고마운데, 아직 시가 덜 되었어.”
형의 시는 세상의 바닥을 무릎이 깨지도록 기어간, 온몸을 끄을며 기어간 흔적이며 생채기들이다. 형은 대장장이가 쇠를 수백 번 두들기고, 담금질하고, 벼리듯이 그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다. 쉽게 얻을 수 없을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지난 수년 동안 분명히 시집 분량만큼의 작품은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했고, 나는 몇 번을 더 졸랐다.
“형, 시집 냅시다. 제발 시집 냅시다.”
몇 번을 조르고 조른 끝에 그예 답을 받아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줘. 조금 더 다듬고 보내줄게.”
그렇게 형의 옥고가 내 손에 들어왔다.

3
해설을 쓴 오민석 교수가 ‘우화’를 통해 시집 전체를 설명하고 있듯이, 이번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우화(알레고리)이다. 기존의 많은 시인들이 우화를 활용했지만, 이번 형의 시집이야말로 단연 그 최고봉에 위치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버거운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얘기하지만 실제 삶은 기쁨(喜)보다는 노여움(怒)에 가깝고, 즐거움(樂)보다는 슬픔(哀)에 가깝지 않은가. 그래서 실제의 삶은 사는 일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이고, 즐기는 일이 아니라 견뎌내는 일에 가깝지 않은가.
그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닌 삶을 형은 우화라는 그릇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우화의 힘은 어떤 무거운 것도 담을 수 있고,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기쁨(喜)이라는 그릇에 노여움(怒)을 담고, 즐거움(樂)이라는 그릇에 슬픔(哀)을 담아내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이번 시집은 한 번 읽어서는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형의 시집을 편집하면서 서너 번을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마지막 읽었을 때 그 맛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는 뜻이다. 층층이 감싼 우화의 껍질을 벗겨내면 마침내 세상과 통하는 형의 전언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4
그러나 무엇보다 시집을 읽는 내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뛰게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형의 굵은 땀이었다. 뜨거운 대장간에서 언어를 담금질하고 또 담글질면서, 벼리고 또 벼리면서 뚝뚝 떨어지는 형의 땀 말이다.

밤새 나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깨어나지 않을 참입니다 바람대로라면 당신 혓바닥에 올려놓을 얇은 꽂잎 한 장이지만 나는 나를 두드리는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전생에 그는 나를 오래 두드려 새파란 낫을 건져갔던 사람입니다 낫에 잘린 꽃들을 애도하기에 늦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피 냄새나는 꽃들의 후생으로 내가 가서 어떤 날끝에도 잘리지 않는 꽃잎 한 장 세상에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다시 두렵습니다?두려워?지금도 불을 견디고 망치질을 견딥니다 한때는 저 소리에 깨어난 쇠스랑이 하루 만에 손가락이 잘려 돌아온 걸 보았습니다 이빨이 다 망가진 도끼도 보았습니다 늙어 고부라진 꼬챙이도 있었지만 아무도 원했던 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용광로 속에서 전생의 기억을 다 지우고 내 곁에 누워 있는 지금 번번이 잠들고 번번이 깨어나는 아침이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쇠붙이로 가득찬 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깨어나지 않을 참이지만 대장장이는 내 속에서 무엇을 건져냈을까요 아 억겁이 쇠의 굴레라지만
― 「대장간 칼」 전문

「대장간 칼」을 보라. 형이 시 한 편을 짓기 위해,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얼마나 담금질하고 있고, 얼마나 벼리고 또 벼리고 있는지를. 혹자는 시인을 일러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형은 연금술사가 아닌 ‘언어의 대장장이’에 가깝다. 연금술사는 이런저런 약품과 기술에 의존하지만, 대장장이는 오직 자신의 손과 자신의 몸을 쓰는 법이다. 연금술사는 초월을 꿈꾸지만, 대장장이는 오직 포월을 견디는 자이다. 그러니 결과물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형이 만들어낸 이 뜨거운 말의 연장들이 많은 독자에게 제대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성목 시인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주요(!) 방식은 우화(fable)이다. 우화는 사물이나 동물을 빌려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장치이므로 두 층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층위는 사물들의 세계에 인간의 서사를 입히는 것이다. 두 번째 층위는 그렇게 해서 사물들로 하여금 인간의 세계에 대하여 말하게 하는 것이다. 우화의 성공 여부는 이 두 층위 사이의 투과성의 정도에 달려 있다. 현실과의 접점이 부족하거나 사물의 세계에 갇힌 우화는 현실을 단순화하며 스스로 도덕적 훈화의 상태에 머문다. 우화가 이렇게 멀리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가르치는 ‘꼰대’가 될 때, 그것이 보내는 타전(打電)은 현실에 가닿지 못한다. 더 이상 메타언어의 지위를 고집하지 않고 그 자체 현실과 한 몸이 될 때 우화는 비로소 ‘다른’ 세계가 된다. 이것이 우화의 시적 효과이다.
(중략)
이성목의 우화는 제목을 보아야 그것이 우화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을 정도로 현실과 밀착되어 있다. 그의 우화에서 사물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로 바로 쏟아져 들어온다. 화자는 우화→현실의 위계에 구멍을 내고 투과성을 최대한 높임으로써 우화가 현실을 규정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의 화자 역시 인간의 상태에서 사물-인간의 겹 존재(double being)로 순식간에 변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서 우화와 현실은 순서나 단계가 아니라 동일성의 상호 내주(페리코레시스, perichoresis) 상태가 된다. 그것들은 동일한 본질의 다른 두 얼굴이며, 서로 겹쳐지면서 동일성의 밀도를 극대화한다.
(중략)
이성목이 만들어 내는 우화들은 현실과 겹쳐지면서 중층적 의미를 생산한다. 그의 시들은 우화와 현실을 왕복운동하면서 그것들을 서로 뒤섞고 흔든다. 우화와 현실이 서로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킬 때 그것들의 경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그의 시 안에서 우화는 현실이 됨으로써 허구에서 벗어나고, 현실은 우화가 됨으로써 의미론적 풍요를 얻는다. 그것들은 서로 합쳐지면서 각각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중략)
그는 페시미즘의 가운데에도 손쉬운 ‘초월’을 꿈꾸지 않으며, “신발을 뚫고 나온 검은 발가락을 경배”한다. 궁핍의 현실 앞에 무릎 꿇는 그의 태도는 모더니즘적 세계관 너머에 숨어 있는 리얼리스트로서의 그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우화들은 사물들과 어깨동무하고 그가 들여다본 저 밑바닥 “대지”의 서사이다. 그리하여 “허공을 버리고 대지로 귀환하는” 그의 시들은 악몽의 세계를 건너가는 “순례”가 된다. 이 시집은 그 발자국들의 아픈 기록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의 해설 「우화의 그늘」 중에서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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