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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분 시집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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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19-06-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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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계간 《시안》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재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번 시집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에는 부조리하고 불완전한 세계를 넘어서려는 시인의 정신적 에너지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환유’의 언어를 통하여 삶을 정직하게 노래하며, ‘역설’을 통해서는 비루한 삶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잘 보여준다. 이때 비극적 세계에 대한 인식과 자아성찰은 비극적 세계 너머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해설의 말을 빌리면, 시인은 “고정된 관습과 절연하고 정주하던 공간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유랑하는 노마드의 삶”을 시에 녹여 냄으로써 “유랑과 고독의 생성적 가치”를 발견해간다. 그리하여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나은 ‘현재’를 위해 끝없이 유랑하는 시인의 시적 여정은 부조리한 세계에 던지는 경고음이자 희망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가 되고 있다.

비장(秘藏)한 진실을 엿보는 기쁜 고통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면, 심리적 환경에 따라 갈리겠지만, 대개 기대나 설렘, 또는 긴장 등속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유독 자신이 무언가로부터 유폐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래서 자의식의 아득한 심연 속에 홀로 유영하고 있을 때 그것은 실체가 뚜렷하지 않을지언정, 어떤 불길한 예감의 사늘한 온도를 띨 수 있다. 문을 여는 순간은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낯선 세계에 자신의 맨살이 속절없이 발각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기에 있다. 『노크 소리가 나는 몇 초간』은 정재분이 자신이라는 육신의 만다라(曼茶羅)에 예기치 않게 틈입하는 세계에 대응하는 육필의 기록이다. 그녀는 언어적 신기(新奇)를 맹신하는 언어의 엽색가처럼 세계를 관음(觀淫)하려 들지도 않으며, 오래된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보채거나 교열(校閱)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녀에게 세계는 그저 다 읽지 못한 자막(「고독」)의 속력으로 안타깝게 스쳐 지나가거나, “구두 굽이 부러졌을 때(「구두 굽이 부러졌을 때」)처럼 잠깐 낭패를 본 공간이다. 이처럼 도발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며, 세계를 사소한 것들의 알리바이(「장갑을 벗다」)를 위한 현장일 뿐으로 인식하는 자세는 차라리 흔치 않다. 이는 정재분의 분명한 미덕이다. 하여 이 미덕이 그녀의 세계로부터 선연한 것은 젖멍울처럼 아리다(「데스벨리」)와 같은 명징하고 아름다운 떨림과 각성을 예인하는 풍경은 필연적이다. 이때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동안은 불편한 긴장과 예감에서 삶과 언어가 가장 깊은 지점에 비장(秘藏)한 진실을 엿보는 기쁜 고통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는다.

ㅡ 오태환(시인)


시인 소개 Ι 정재분

2005년 계간 《시안》 등단. 시집 『그대를 듣는다』, 산문집 『침묵을 엿듣다』가 있음. 월간 《공정한시인의사회》 편집위원.

시집 속의 시

​항성(恒星)

해질녘

동지 지나고 언 볼보다

붉은

오, 새삼스러워라

한 오라기도 삐뚜름 없이

둥근

광채 벗으니

오랜 시간을 열고 나온

두루마리 서책

서녘의 묵언을

베껴 적는 사과나무,

그 가지가 꾸는 꿈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궤도

둥글어야 허공을 사는가

가없이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

철 지난 애인이 말했지

나는 나를 못 믿어

귓바퀴에서 오래도록 맴도는 진동에

예감이 고장났을 거야

씹을 게 늘 궁한 저작근에

함량이 모자라는 초콜릿이 도착했지

통째로 먹어치워도

밥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어쩌지 이젠 괜찮은데

맨정신으로 하루에 하나씩 약인 듯 먹으면

흑갈색 마법이 화를 낼까

불꽃놀이는 밤에 하는 거잖아

나의 초콜릿은

틀 모양 그대로 네모여야 해

반듯반듯한 형태가

상온에서 망가질지라도


맥주를 마시며

그때 나는 어디에서 보았을까 상복을 입은 긴 행렬과 곡소리와 짜랑짜랑 햇빛을 가르는 요령소리를 툇마루 끝에서 내다보았는지 고무신을 벗어 송사리를 잡다가 보았는지 아무튼 보았을 것인데 세상의 고삐를 놓을 때 얼마나 아파야 하는지 그것이 두려웠을 것인데 물에 젖은 깃털을 털듯 부르르 몸을 털었을 것인데 홍어 삭는 냄새가 불현듯 슬픔을 닮았다고 깨닫는 나이에, 코 묻은 두려움이 휘발된 자리에 허영이래도 좋을 바람이 생긴 것은 순전히 미당 선생 때문일 것인데 곡기를 끊고 도수 낮은 맥주를 마시며 수억 개 세포의 눈꺼풀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었다기에 낙후한 몸과 속삭이며 고삐 말아 쥐고 말을 부리듯 시간의 고삐를 놓지 않고 사자의 발걸음을 생중계했다기에 겨우내 나는 손수 만든 통증으로 생의 언덕에서 고수레하였을 것인데 봄에 핀 꽃들은 환청을 앓으면서도 삼천궁녀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기록을 찾지 못했고 기꺼이 부장품이 되겠다는 어떤 맹서 또한 없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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