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깅왕노 시집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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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1회 작성일 19-11-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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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김왕노

유모차에 유머처럼 늙은 개를 모시고

할머니가 백 년 복사꽃 나무 아래로 간다.

바람이 불자 백 년을 기념해 팡파르를 울리듯

공중에 솟구쳤다가 분분이 휘날리는 복사꽃잎, 꽃잎

백 년 복사꽃 나무 아래로 가는 할머니의 미소가

신라의 수막새에 그려진 천년 미소라

유모차에 유머처럼 앉은 늙은 개의 미소도 천년 미소라

백 년 복사꽃 나무 아래 천년 미소가 복사꽃처럼 피어나간다.

그리운 쪽으로 한 발 두 발 천년이 간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 앞에

지퍼가 열리듯이 봄 길 환히 열리고 있다.



에버그린을 위하여


김왕노


고층 아파트 외벽 외줄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

에버그린이라는 글자를 쓴다고 매달려 있다.

외줄에 그의 심장과 호흡, 그의 위와 식도와 희망

그의 가족사와 그의 하루를 매달았다.

외벽을 때리는 바람에 그가 출렁일 때마다

그와 함께 매달린 그의 옷소매가 그의 추억이

그의 피가 그의 눈빛이 그의 발과 손이 순간 출렁한다.

그가 믿는 것은 저녁이면 도시 외곽에서

아직도 밥 짓는 연기 피어올라 그를 부르는

뒤란에 샘 솟고 머윗잎 푸른 집이 아니다.

오늘도 잘 갔다 오라고 아기를 안고 집 밖까지 나와

배웅하던 알뜰한 그의 아내도 전혀 아니다.

그가 멀리서도 잘 보이게 써가는 에버그린도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 해오는 페인트 통도 아니다.

오직 그가 믿는 것은 그를 지상으로 놓칠까

팽팽하게 긴장한 외줄 하나, 이리저리 엮어져

질긴 속을 가진 고층 빌딩 옥상에서 아래로 내린

다래 넝쿨 같은 외줄 하나, 그가 가진 삶의 무게가

그의 체중보다 몇 배 더 나가는 것을 아는 외줄 하나

그가 바람 속에서 진땀 뺄수록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에버그린, 늘 푸른, 상록수라는 의미

작업을 중단해도 좋은 예상하지 않은 바람 속에서

딱정벌레처럼 외줄에 매달린 그가 외벽에 붙어

조금씩 써가는 에버그린이란 말은 시위의 구호 같다.

제발 에버그린 하라는 강한 메시지의 구호 같다.

바라볼 때마다 내 등골을 서늘히 훑고 가는 긴장감




김왕노 약력 

1957년 경북 포항 출생.

19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사진 속의 바다』 『그리운 파란만장』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이별 그 후의 날들』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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