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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허위 -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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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22회 작성일 15-09-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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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허위 / 오세영




가끔 허위를 퍼뜨려 그것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사태의 왜곡 혹은 그르침이다. 동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별하자면 그것은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한다. 하나는 무지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 목적의식 때문이다. 전자는 무식의 소치에서 비롯한 것이니 아량을 베풀어 말하자면 실수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그것은 일종의 범죄에 가까운 행위가 된다. 그러나 우연한 실수이든 의도적 왜곡이든 기정사실화된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문학의 경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가령 훌륭하지 못한 작품을 훌륭하다고 주장하여 어떤 기회에 추천을 한다든지, 한 작품을 의도적으로 본 내용과 다르게 해석, 평가하여 그것을 어떤 정치적, 사회적 목적에 이용한다든지, 패거리를 지어 자신들의 이권에 맞도록 문화적 상황을 왜곡시킨다든지 하는 것 등인데 이 모두 우리 문단의 오랜 병폐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잘못 된 문학 이론의 횡행이다. 예컨대 시(詩)는 '언어의 절(사원)'이라느니, 현대시는 서사시, 서정시, 극시로 나눈다느니 하는 것 따위는 이제 보편화된 거짓 이론들의 하나로 우리 학계나 문단에서 거의 기정사실화되다시피 했지만 외국 시론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이같은 망발이 여과 없이 통용되고 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중 한 가지를 들어본다. 이 역시 우리 시단에서 보편화되다시피 한 인용문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아도르노가 폴란드의 나치 아우슈비치 유태인 수용소를 방문한 후 그 비인간적 참상에 경악하고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인용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인용자가 세계적인 석학이 말했다는 이같은 언급의 권위를 빌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학현상 자체를 멋대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즉 '세계적인 석학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오늘날 서정시라는 것을 창작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정시란 이미 죽어버린 장르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는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시 그러니까 아방가르드나 포스트 모더니즘 시를 써야 한다.' 이렇듯 인용자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서정시란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규정해서 추방해버리고 그 대신 포스트 모더
니즘 시만을 써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데 아도르노의 언급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젊은 비평가들 및 시인들이 이에 동조하여 같은 논리의 글을 재생산해 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우리 시단에서 널리 운위되고 있는 위의 언급 즉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Nach Auschwitz ein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시를 쓰는 것이 왜 불가능해졌는지를 표명하는 인식 또한 갉아먹고 있다." 이는 아도르노가 1949년에 쓰고 1951년 한 사회학 논문에서 발표했던 논문의 한 문장이다. (Th. Adorno, Kulturkritikund Gesellschaft, in: Prismen, Munchen 1963, 26면) 인용자는 ―의도적인지 착오인지는 몰라도―독일어로 '시(Gedicht)'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서정시'라는 단어로 슬쩍 바꿔치기 하여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했던 것이다.

물론 독일어 'Gedicht'는 시 일반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거기에는 넓은 의미로 문학(Dichtung)이라는 뜻까지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아도르노가 굳이 '서정시'만을 지적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다면―물론 이 '서정시'의 개념에도 많은 오해가 있음으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지만,―당연히 'lyrisches Gedicht' 혹은 'Lyrik'라는 용어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Gedicht'라는 말로써 아도르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우슈비치 수용소의 참상을 본 뒤 인간성이 말살된 이 비극 앞에서 시 혹은 문학이 이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회의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언급을 왜곡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아도르노가 딱히 서정시만을 부정하고 포스트 모더니즘 시를 옹호했다는 식의 논리를 폈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설령 아도르노가 한국의 인용자들처럼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철학적 입장이 결코 아방가르드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옹호할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 철학자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이성 옹호론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토대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현상학이나 해체주의 철학 즉 반이성주의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성주의철학자가 반이성주의 문학을 옹호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글은 진실한 내용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 특별히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그러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무식하고 불쌍한 중생들을 쉽게 미혹에 빠트리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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